본당처럼 모든것을 하려고 노력하였으니 년2회의 피정은 물론이고 야외미사, 성지순례,성경학교,특히 성탄때의 문화제는 공소의 잔치날이었고 아이들을 좋아하고 또 이들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려는 나의 뜻이 그대로 반영되어 틈만 나면 등산과 야유회를 가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본당신부의 노릇을 다했던것같다.
계속 이어지는 교리를 하던중에 커다란 교통사고를 당하였는데 변함없이 교리준비(근무중에 틈틈이) 를 하여 퇴근하던중에 술취한 아저씨의 자전거와 나의 오토바이가 부딪쳐 36시간을 생사를 헤메이다 기적처럼 회생하였으니 이또한 주님의 은총이 아닐수 없었다. 병원생활을 마치고 퇴원한후에 사고처리(그아저씨는 사망함)를 하는데 경찰서의 수사계장이 피해자의 동생이라 사건은 일방적인 내잘못으로 꾸며져 있었고 항변하려 했으나 기억을 잊어버린 나는 일방적으로 당하였다.
하지만 본당신부님의 노력으로 약식기소와 벌금 그리고 신자들은 조건없고 이자도 없는 돈을 빌려주었고 회사에선 휴직후 복직을 시키지않으려 했으나(노동조합감사를 봄) 지부장의 밀어부침으로 대표이사와 담판을 짓고 복직한것등은 지금 생각해도 꿈처럼 생각된다.
신부님의 주선으로 교구청에서까지 도움을 받은 나는 다시 예전보다 더 열심히 공소일을 맡아 하게 되었으니 가장 좋아하는 녀석들은 바로 아이들이었다.
정말로 죽었다 살아난 나는 이전보다 더열심히 하던중에 본당신부님이 바뀌고 회장님도 바뀌어 그분들과 갈등이 시작되어 정말 어려움이 쌓여만갔다.
바뀐 회장님은 재정에 간섭하며 무조건 절약할것을 주문하고 나는 아이들과 피정등의 교육에 투자하는것까지 줄일수없다는 이유로 자주 부딪치게 되고 나이드신 본당신부님은 회장님의 말을 더 신뢰하면서 소원해지기 시작하였다.
떠날때가 된것을 직감하였고 반년에 걸쳐 제대와 조명등을 나의 돈으로 교체한후에 공주시내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지금도 아쉬운것은 봉고차를 운행해서 1시간 이상씩을 걸어서 공소에 나오시던 할머니들을 모시지 못한것이 후회가 된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