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이 내리신 체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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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유철 | 작성일2009-12-21 | 조회수2,558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요즘은 승진경쟁에 시달리는 직장인은 물론 현업에서 은퇴한 사람들도 무언가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이른바 평생교육시대가 되었습니다. 저도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저녁에는 학원 한 군데를 다니고 있답니다. 무슨 자격증을 따려면 국가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혼자서 책만 보아가지고는 도저히 합격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지요. 지난 12월 10일은 서울대교구 직장사목부 주관으로 직장인을 위한 송년미사를 드리는 날이었습니다. 정진석 니꼴라오 추기경님께서 직장인(샐러리맨) 신자들을 위해 특별히 미사를 집전해 주시기로 한 날입니다. 이번 송년 미사는 금년이 명동대성당에서 매주 금요일 점심시간에 드리는 '직장인미사'를 시작한 지 2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에 교구장이신 정 추기경님께서 직접 미사를 집전해주시는 은혜로운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해야 하나요? 송년미사 날이 마침 학원수업이 들어 있는 목요일이었습니다. 학원에 가야할 지 송년미사에 참석해야할 지 잠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학원강의는 저녁 7시부터 10시 30분이 넘는 시간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하루라도 빠지면 수업손실이 막대합니다. 그래서 교구 직장인 미사는 포기하고 학원으로 향했습니다. 다만 우리 직장의 가톨릭교우회 송년미사가 예정된12월 30일에는 미사에 참석하고 학원수업은 결석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였던 교구 직장인 송년미사 날의 학원수업은 11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고,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환갑을 지척에 둔 나이에 몸은 지쳤지만 나름 열심히 공부한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평소 습관대로 침대에 반듯이 누웠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궁둥이때문에 높이 들린 허리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바로 눕지 못하고 옆으로 돌아 누워서야 잠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려는 데 허리가 아파서 똑바로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습니다. 몸을 돌려 엎드린 자세로 겨우 침대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전에 가끔 허리 왼쪽 또는 오른쪽 일부가 좀 아픈 적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허리 전체가 아픈 일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기에 마음 속으로 여간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세수를 하려고 하니 허리가 아파서 고개조차 구부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뻣뻣이 서서 간신히 면도와 세수를 하고 나니까 만사를 제쳐두고 허리병부터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당장 침구사를 찾아갔습니다. 당분간 매일 한 시간씩 침을 맞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 아픈 건지 원인을 물어보아도 시원하게 대답해 주지 않았습니다. "술을 마셔서 그런가?" 자신없다는 듯이 혼잣말처럼 대꾸하였습니다. 12월 13일은 주일이었습니다. 허리통증을 참으며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미사는 시작되었고 신앙고백을 할 차례가 왔습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부분에서 허리를 굽혀 공경표시를 해야 하는데 허리가 얼마나 뻣뻣하게 굳었는지 도저히 굽힐 수가 없었습니다. 겨우 고개만 조금 숙이는 것으로 순서를 때웠습니다. '거양 성체' 때도, '평화의 인사' 때도 허리를 깊이 숙여야 하는데 굽힐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평소 주일미사는 9시 미사( 중고등부)를 많이 참례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학원가느라고 미사에 빠지는 학생들이 많아 군데군데 빈 자리가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그 때마다 " 미사는 한 시간이면 충분한데 왜 미사를 빼먹나? 공부할 때 좀 더 집중하면 될텐데." 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보다 공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문제라는 결론을 내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학원때문에 나 자신이 1년에 단 한 번밖에 없는 서울대교구 직장인 송년미사를 빼먹었으니, 내 허리에 갑작스런 고통이 찾아 온 것은 하느님께서 징벌을 내리신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12월 17일은 학원수업이 있는 목요일이었지만 우리본당 남성구역모임에 참석하기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남성구역모임에 참석하는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허리가 점점 부드러지고 있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물론 아직 허리를 깊이 구부릴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 대치동본당 남성15구역은 이번 12월 송년모임은 주임신부님(박순재 라파엘 몬시뇰)을 모시고 외부 식당에서 할 예정이었습니다. 부구역장은 몬시뇰이 오시는데 참석자수가 너무 적을까봐 꼭 참석해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두 차례나 보내왔습니다. 몬시뇰께서는 갑자기 예정에 없던 저녁미사와 판공성사로 인해 식당에는 못 오시고 성당 회의실로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 성당에 가보니 회의탁자에 14자리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남성구역모임 신자 12명이 6명씩 좌우로 앉고, 주임신부님과 보좌신부님이 양 모서리에 앉으시니 좌석이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우리 구역 신자 12명은 즉석에서 12사도로 승격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학원에 가고 구역모임에 불참했더라면 어찌됐을까? 이빨빠진 것처럼 빈 자리가 하나 생겼을 것이고, 주임신부님으로부터 12사도라는 애칭도 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대림 제4주일(12월 20일) 미사 때에는 허리를 앞으로 완전히 구부릴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하느님은 제게 고통을 주신지 열흘만에 다시 온전한 몸으로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저는 이번에 믿음의 시험을 단단히 받고 넘어져 큰 고통을 당한 끝에 예전에 굳세었던 믿음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오 6장 33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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