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스테파노, 원뿔 속을 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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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형기 | 작성일2010-09-11 | 조회수801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교통사고를 당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그 당시의 상황은 늘 머릿 속에 남아 있다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불쑥불쑥 되살아나서 괴롭힌다. 의학 용어로 심적 외상(psychic trauma)에 해당하는데 사전에서는 이 용어를 “몹시 불쾌하고 강렬한 체험(심적 외상)은 자신의 정신적인 안정을 위협하는,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그것은 억압이라는 기제(機制)에 의하여 의식 세계에서 무의식 세계로 전환된다. 무의식적으로 억압된 심적 외상은 콤플렉스를 형성하여 장래 그 사람의 정신생활에 영향을 끼친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사고를 당할 때의 상황은 비디오가 돌아가듯이 정상 속도, 저속, 고속, 정지, 반복 재생 등 여러 가지로 머릿속에서 수없이 재생되고, 밤에 자다가 재생이 되면 악몽도 그런 악몽이 없다.
괴롭지만 그 당시의 상황을 글로써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차 뒤에 서서 트렁크를 열고 들여다본다. 갑자기 몸이 붕 뜨는 것 같다. 잠시 후에 나는 큰 원뿔 속을 날아가고 있는데 원뿔 끝에는 빛이 선명하게 비친다. 마치 다이빙하듯이 양팔은 머리 위로 뻗치고 있다. 몹시 불쾌한 느낌이다. 원뿔 안쪽의 표면은 거울 뒤처럼 거친데 칙칙한 분홍색이라서 별로 아름다운 느낌은 없다. 빛을 향해서 한참 날아가다가(뛰어든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깜빡 정신을 잃었다. 다시 깨어나 보니 나는 땅바닥에 누워 있고 내 차는 어디론가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다. 몸을 움직여 보니 양다리는 흐느적거리고 넓적다리 부근이 불이 붙는 것처럼 뜨겁다. 나중에 아내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다른 차가 뒤에서 나를 치고 내 차는 길 건너편으로 멀리 튕겨져나가 있었다고 하니 사고 당시의 충격이 엄청났을 것이다. 그런데도 머리도 다치지 않았고, (잘 생긴^^) 얼굴이나 양팔은 생채기 하나 없고 몸 아래쪽만 엉망이 되어 버렸다. MRI나 CT 촬영으로 뇌를 여러 차례 점검해 보아도 멀쩡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다리 하나를 잃었으니 일상생활은 불편해도 외모는 달라진 게 없고 뇌를 다치지 않아서 정신활동에는 문제가 없으니(머리가 오히려 더 좋아졌다는 말도 가끔 듣는다.^^) 크게 다행스럽기도 하고 참 신기하기도 했다. 이런 게 기적이 아닐까? 며칠 전에 다음 성경 구절을 읽고 나는 눈물을 흘렸다.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그들의 목숨을 죽음에서 구하시고 굶주릴 때 그들을 살리시기 위함이라네. (시편 33,18-19)” 바로 주님이셨군요. 주님의 눈이 저에게 머무르시다가 저를 구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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