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26주일]광주대교구주보:권병석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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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성우 세자요한 신부 | 작성일1998-09-27 | 조회수7,317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광주대교구주보]
있는 자의 불행, 없는 자의 행복 권 병석 신부 / 흑산 성당 주임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뀌기만 하면 개혁과 사정이라는 역사적 틀이 진행된다. 선량한 백성들은 이번에도 혹시나 하는 갈망과 보상심리를 가지고, 새정부의 칼날에 시선과 마음을 모으고 있다. 연일 지난날 잘나가던 사람들이 부정과 부패에 연루되었다는 소식과 쇠고랑 차는 것을 보게 되는 요즘이다.
"일등 민족이라고 으스대고 상아 침상에서 뒹굴던 자들이 선참으로 끌려가 흥청대던 소리 간데 없이 되리라"는 제1독서의 아모스 예언자의 외침이 옛 얘기가 아닌 통쾌한 현실이다. 그러나 민심은 아무도 충분하다고 여기지 않으며 분노는 끊이지 않는다. 나라와 국민을 비극적 고통으로 몰아 넣고도 누구 하나 석고대죄는 커녕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여전히 민생의 아픔은 소홀히 한채 자신들의 이익과 기득권을 위한 구역질 나는 행태를 계속하고 있고, 혼란스러운 경제상황에서 오는 빈익빈 부익부의 골은 회복이 불가능하리만큼 깊어져 가고 있다. 더 맘 놓고 사치를 여유롭게 부려 보는 부자들과 염려스럽게도 없는 이들마저 이판사판식의 태도가 보여지고 있다. 부디 만연해가는 불신과 불안이 걷혀지도록 간절한 기도가 모아지게 된다. 있는 이들, 없는 이들 모두 마음의 가난에 머물러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산상설교의 가난한 사람의 행복과 부유한 사람의 불행을 또렷한 화면으로 비춰주고 있다. 우리의 신앙과 성서는 열심히 노력해서 부유하게 사는 것을 복과 선으로, 게을러서 가난하게 사는 것을 벌과 악으로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부유함 자체가 악이거나, 가난함 자체가 선일 수는 없다. 다만 피조물인 우리 자신의 처지를 바로 알고 최종 목표이자 늘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하느님의 가르침인 마음의 가난이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이다. 부자가 라자로를 괴롭혔거나 돌봐주었다는 얘기가 오늘 복음에서 찾아 볼 수 없는데도 부자가 단죄를 받았다는 것은 그것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부자는 소위 지위, 명예, 물질을 상대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라자로는 현실에 허덕이는 없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비유 가르침은 명료하다. 부자가 영원한 불행을 당한 것은 있는 것에 안주하고 탐닉함으로써 정작 자신의 구원과 이웃의 구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반면에 라자로의 영원한 행복은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충분히 졌기 때문이다. 특히 뒤늦은 후회 속에서 자기 형제들 만이라도 구원하기 위해, 라자로를 대신 보내어 달라고 눈물어린 간청을 하는 부자의 모습과 소리는 늘 우리 곁에 산 교훈으로 머물러야 한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도 깨달듯이 있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있는 것을 참다운 가치, 영원한 기쁨을 위해 쓸 수 있도록 말이다. 2독서에서도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보편적 사랑의 선택을 전해 주고 있다. 그 사랑과 평화에 머무르는 가치를 따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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