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건망증에 대한 변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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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은정 | 작성일1998-10-11 | 조회수6,884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건망증에 대한 변명.
저는 성격이 야무지지 못한 것까지는 그래도 괜찮은데 (별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거죠.) 문제는 병적이다 싶은 건망증입니다. 늘상 건망증으로 애를 먹곤 합니다. 조금전 12시 삼종기도를 드렸습니다. 성실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나마 삼종기도는 열심히 하고 있지요. 물론 아직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 여서 기도문을 흘끔흘끔 보면서 하지만요. 청소를 하다가 여하튼 또 더듬더듬 삼종기도를 드리면서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이구나. 하루에 두 번 (참고로 저는 아침 6시에는 못 일어나거든요.) 이라도 주님을 떠오리게 되는구나." 건망증 문제는 아니란 걸 알면서도 늘상 주님을 까맣게 잊고 지냅니다. 이곳은 성당도 보이고 눈돌리는 곳마다 십자 고상과 성서가 있으면서도 그것은 그저 사무실의 풍경이려니 생각한다는 것이죠. 그러다가 삼종기도라도 하게 되면 그래도 주님을 떠올려 본다는 것이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 주십니다. 그들의 기쁨은 짐작하고도 남을 만합니다. 아무런 고통없이 나병을 고쳤으니 얼마나 기뻤을까요. 하지만 그중에서 단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만이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마리아 사람이라 하면 유대인에게 이방인 취급을 당했던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늘 나그네와 이방인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이시던 예수님의 사랑이 오늘 복음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지요.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나병이 완전히 치유된 것에만 정신이 팔려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말씀도 잊고 후닥닥 사라져 버린 나머지 아홉명에 대한 변명을 하고 싶습니다. 나머지 아홉의 마음이 제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어서요. 늘 저는 스스로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는 사마리아 사람의 10분정도의 믿음도 갖고 있지 못 하다는 걸 깨닫습니다. 10분의 1은커녕 정말 겨자씨 만한 믿음도 없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아홉명의 순진함도 지켜 봐 주고 싶습니다. 그동안 문둥이라는 멸시에 얼마나 가슴이 맺혔으면,또 얼마나 기쁘고 놀랐으면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렇게 사라져 버렸을까, 하는 연민이 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항상 주님을 생각하며 살지는 못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늘 우리를 생각하고 계시죠. 살면서 정말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 이루어 졌을 때, 우리는 하느님께 저절로 감사기도를 드리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이런 확신을 해 봅니다. 열 사람중 한 사람만이 주님께 감사를 드렸지만 그 분 께서는 나머지 아홉 명의 치유를 무척이나 기뻐하신 다는 것, 그리고 그 아홉명도 세월이 흐른 뒤 반드시 깨닫고 감사기도를 드릴 날이 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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