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앙을 돌이켜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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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철희 | 작성일1998-11-13 | 조회수6,475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제가 견진교리를 작성하면서, 썼던 내용입니다. 신앙인이 남긴 글은 아니지만, 꽤 괜찮다는 판단을 해서... 이 글을 애초에 남기신 분에게 욕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석 류영모의 생각과 믿음. 시리즈 1/5권. 36-37면>
"무사(無私: 사심없이 공정함)만 하고 보면 암흑이나 사망의 두려움이 없다. 빛을 기(忌: 꺼림)함은 사람의 것을 도적(盜賊)하는 자이지만, 어둠을 기(忌:꺼림)함은 하느님의 것을 도적하는 자(=생명<生命>을 사유<私有>하는 자)이다. 사람들은 흔히 대낮에는 살림을 위해서 다니고 일하고 배우고 놀고, 밤에는 그것을 위해 쉬고 잠자고 꿈꾸는 것으로 안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다. 밝은 것이 있는 뒤에는 크게 잊혀진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은연(隱然:뚜렷하지 않으나 어딘가 모르게 모양이 드러남)중의 통신으로서 밤중에 희미한 빛으로 태양광선을 거치지 않고 나타나는,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영혼과의 통신이다. 우리는 이것을 망각하고 그저 잠이나 자고 있다. 한낮에만 사는 것이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정신없는 소리이다. 빛을 가리어 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대낮에 영원과 사귀겠다는 것은 허영(虛榮:분수에 넘치는 외관상의 영예)이다. 우리가 정말 밝게 사는 것은 영원과 통신할 수 있는 데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낮의 밝음은 우주의 신비와 영혼의 속삭임을 방해하는 것이다. 낮에 허영에 취해서 날뛰는 것도 모자라 그것을 밤에까지 연장하여 불야성(不夜城)을 만들려는 것은 사실 점점 어두운 데로 들어가는 것이다. 영원(永遠)과의 통신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생을 몰락시키는 것 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 낮보다 더 밝게 하는 길은 바로 이 길이다. 보이는 것은 빛이 아니다. 햇빛, 달빛, 별빛 다 본들 뭐가 시원한가? 우주의 영원한 소식을 받아들이고 숨은 길로 들어서는 것이 정말 우리가 위로 올라가는 길이다. 하느님은 사랑(1요한 4,16)이시나 사랑이 하느님 될 수 없음같이. 하느님은 빛이시나 빛이 하느님이 아니다. 흔한 사랑이 치미(痴迷: 병과 같은 혼란???)를 일으키고 여러 가지 빛은 허영을 꾸민다. 암흑을 타는 소적(小賊:좀도둑)이 있지만 광색(光色)을 쓰는 대간(大姦:아주 간사한 사람)이 많다. 태양계에서 미(美)와 역(力)의 대본(大本)이 태양이지만 태양은 물질이니 우주의 작은 화로(火爐)이다. <광(光)은 우주파동의 소부분(小部分)> 정신은 물질보다 크다. 물질 이상이다. 공(功)을 감추는 미(美)와 역(力)은 등잔 속의 기름이요, 상을 타는 광영(光榮)은 심지 끝의 불이다. 기름은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의 영원하신 지시대로 감이요, 불은 바래진 세상의 한때 자랑이다. 창세기에 '(먼저) 저녁이 있고 아침이 있다<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 하루하루의 사업을 마칠 때마다 밤, 낮 하루가 지났다. 1,5.8ff>'고 하였고 묵시록에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다시 햇빛이 쓸 데 없다<묵시록 21,23 : 새 하늘과 새 땅에는 하느님의 영광이 도성을 밝혀주며 어린양이 등불이다>' 하였으니 첨도 저녁이요, 나중도 저녁이다. 첨과 나중이 한 가지로 저녁이다. 저녁은 영원하다. 낮이란 만년을 깜박거려도 하루살이의 빛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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