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PBC]6월5일성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독서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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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한구 | 작성일1999-06-08 | 조회수3,072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PBC기쁜소식 밝은세상] 99년 6월 5일 성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토) 1. 독서묵상 온갖 시련과 불행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따르는 삶을 살았던 토비트와 토비아, 그리고 사라의 기나긴 여정이 끝났습니다. 토비트 가족은 온갖 어려움을 겪고나서 그들의 삶을 이끌어 주시던 분은 바로 하느님이셨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천사 라파엘을 보내셔서 토비트 가족의 인생길에 동행 해주셨습니다. 천사 라파엘은 하느님께로 돌아가기 전 토비트 가족에게 인생의 지혜를 일러 줍니다. 그건 옳지 못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는 것 보다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올바른 마음으로 자선을 베푸는 것이 더좋다는 것이었습니다. 황금을 쌓아두는 것보다는 자선을 행하는 것이 더 좋은 일이라고 이야기 하죠. 그리고 자선은 사람을 죽음에서 건져내고 모든 죄를 깨끗이 없애 버린다고 말합니다. 이런 얘기가 전해 오는데요. 옛날에 심술궂게 고약한 일만 하면서 살아온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할머니가 죽어서 갈 곳은 지옥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죽고 하늘에 가 보니 이 할머니가 천국에서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더라는 겁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고약한 할머니가 천국에서 머무를 수 있느냐고 하느님께 따졌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웃으시며 말씀하셨답니다. 할머니가 언젠가 배고픈 거지에게 파 한뿌리를 던져 준 적이 있는데 할머니는 그 파뿌리를 잡고 천국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고 말이죠. 오늘 라파엘 천사도 우리에게 자선을 베푸는 건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내 주고 우리를 죄에서 구해주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하는 자선이 나를 살리고 이웃에게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2. 복음 묵상 예수님의 눈길이 머무시는 곳은 언제나 특이합니다. 예수님은 보통 사람들이 자칫 지나치기 쉬운 곳에 눈길을 주시고 관심을 쏟으십니다. 오늘도 회당에서 사람들의 눈길은 지체 높고 돈많은 부자들이 많은 돈을 헌금함에 넣는 것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등이 굽고 배고파 보이는 한 과부 할머니가 부끄러운 듯이 살짝 집어 넣는 동전 두닢을 눈여겨 보십니다. 그 돈을 헌금하고 나면 오늘 그 과부는 저녁을 굶어야 하겠죠. 예수님께서 과연 그 과부가 그 돈으로 저녁을 먹는 것을 더 기뻐하셨을까요. 한끼를 굶고 헌금하는 걸 더 기뻐하셨을까요. 우리들의 짧은 생각으로는 할머니가 그 돈으로 따뜻한 밥한끼 드시는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간혹 본당에서도 혼자서 어렵게 사시는 노인 분들이 교무금과 헌금을 꼬박꼬박 내시는 걸 볼 수 있는데요. 또 영세민 혜택을 받으시면서도 성전건립기금까지 내시는 할머니들이 계시죠. 도움을 받아야 할 분들이 이렇게 없는 돈을 쪼개서 헌금을 하시면서도 오히려 돈이 적다고 부끄러워 하십니다. 이런 분들에게 헌금을 내라고 강요하는 율법학자들과 사제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는 사람들이라고 비난 하십니다. 율법학자들은 상류층으로 어디가나 인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경건함과 학식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기 위해 기다란 예복을 입고 옷에 술을 달았습니다. 회당이나 잔치집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길게 기도하기를 줄기고 인사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들이 흠없고 올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한 율법학자들을 비난하십니다. 율법학자들은 자신처럼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죄인 취급하고 한자리에 앉지도 않으려고 했으니까요. 당연히 넉넉치 못해서 그 많은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죄인의 신분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지요.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한 가난한 과부는 저녁을 굶으면서까지도 헌금함에 생활비를 넣었습니다. 그걸 지켜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의 생활비까지 헌금하게 만드는 사회구조와 율법학자들을 비난하셨습니다. 과부를 등쳐먹는 사람들이라고 말이죠. 예수님은 언제나 이 과부와 같이 자신을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의 친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 많은 돈을 헌금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고 가진 것을 다 바치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예수님은 언제나 친구가 되셨고 우정을 나누셨습니다. 3. 오늘도 함께 하소서 언제나 가장 보잘 것 없고 너무 작아서 사람들 눈에는 하찮게 느껴지는 곳에 눈길을 주시는 예수님 저희들의 눈길도 당신과 같은 곳에 머무르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눈은 가난한 과부가 그날 식사를 거르고 가진 것을 모두 하느님께 바치는 그 곳에 머무르지 못합니다. 저희들의 눈은 저희도 모르는 사이에 크고 화려하고 조명이 번득이는 곳을 찾아 갑니다. 신문이나 텔레비젼도 온통 권력있고 재물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지고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밀려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 가난이라는 멍에를 지고 살아가는 많은 가난한 이웃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남들을 위해 자선을 할 형편도 되지 못하고 좋은 옷으로 단장하고 성당에 나올 처지도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이 아무 부담감 없이 성전에 나올 수 있고 넉넉한 사람들과 자연스레 친교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교회 공동체가 되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이 언제나 가난하고 죄인 취급 받던 사람들, 이 땅에서 소외받던 사람들과 사람과 우정을 나누신것처럼 저희들도 당신을 닮아가게 해 주십시오. 많이 바치는 것을 자랑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저희들도 모르는 사이에 먹을 양식마저 포기하고 헌금하기를 강요하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해 주십시오. 만약 그렇게 했다면 저희들은 옛날 율법학자들처럼 과부의 양식을 등쳐먹는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과부처럼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하느님 앞에 인정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게 해 주십시오. 저를 지탱해 준다고 느끼는 재물과 지위의 껍데기를 벗어버리고도 하느님 앞에 겸손하게 나설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예수님. 저희들의 눈이 당신과 같이 가난한 과부에게 머물게 해주시고 가난한 과부를 보호하는 사람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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