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모님의 개성과 사람의 가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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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영미 | 작성일1999-06-12 | 조회수3,163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운이 있는 사람 복이 많은 사람 용모가 출중하며 학식이 있고 돈이 많은며 좋은 환경에서 태어 났으며 건강하고 남성이고 성격 좋으며 젊은 사람이라면 세상 사람들 기준으로는 그를 킹카라고 하겠지요 흠 잡을 때가 없으니깐...
그러나 이런 다섯 줄로 사람의 인생을 인상을 결정 짓고 살아가게 할 수 있을까?
사람이 한번 웃으려면 17개에 근육이 움직이며 찡그린 표정을 위해서는 43개에 근육이 필요 하다고 합니다.
즉 하나 광대에 웃음을 행복한 웃음으로만 우리는 정의 내리지 않습니다. 웃는 다고 다 웃는 얼굴은 아니므로 너무 이기적으로 개인화 될 필요는 없지만 개 개인에 삶도 중요한 것 every body get story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어 숙어 중에 하나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각에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같은 시선도 잇지만 다른 시선도 있고 하나의 사물을 놓고 한 사람이 한 의견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의견을 낼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삶은 불행으로 정의 내린다면 끝없이 불행한 여인 이였고 행복한 여인으로 보면 끝없이 행복한 여인입니다.
하나 중요한 것은 남이 보는 나도 아니고 다른 이가 보는 나도 아니며 하느님이 보는 나입니다.
내 행불이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 사상에서 영향을 받고 다른이들 역시 그들의 주관을 갖고 나를 판단 하듯이
정확이 나란 사람을 알고 나란 사람을 정의 내릴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 뿐입니다. 행불을 주님께 맡기는 것
성모님은 "주님의 종이오니 지금 말씀 그대로 제게 이루어 지기 바랍니다." 말씀 하셨습니다.
그 말씀로 에수님은 이 세상에 오셨고 성모님 역사의 장에 등장하게 되신 것 하나 그 전부터 예수님이 성모님 태 안에 있기 전부터 계셨던 것처럼 성모님도 몇 년인지는 몰라도 전승에 따라 사적 계시 받는 이 마다 조금씩 다르므로 예수님이 육화 되시기 전부터 한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하느님을 위한 삶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 하느님의 의지를 받아 드리고 이루어 드리는 삶이야 말로 가치 있습니다. 그 밖에 것은 언제나 상대적인 가치로 인해 흔들릴 수 밖에 없고 다르게 정의 내릴 수 있습니다.
물론 이방인에게 우리 삶은 어리석은 삶으로 치부 되며 유대인들에게는 비위가 뒤틀리는 삶으로 정의 되지만
바울이 말씀 하셨듯 그것이 무슨 대수 이겠습니까? 나의 심판은 주님께 달렸고 나는 스스로도 판단하지 않으며 다른 이들도 판단하지 않고 열심이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필립비서 참조)
제 식대로 정의 내린다면 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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