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모승천 대축일 강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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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영래 | 작성일1999-08-15 | 조회수3,334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성모승천 대축일
주제 : 믿음은 즉시 응답하는 것이다.
990815(잠실천주교회)
즉시 응답함이 이 세상에 바로 구원을 나주셨다.
1. 우리는 성모님을 굉장히 공경한다. 그 이유가 혹시 잘 들어주니까 어린이가 자기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 좋아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유아기적 발상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좀 더 성숙한 신앙을 갖도록 하자..
2. 청년들이나 학생들에게 "너 예수님 실냐?" 하고 물으면 모두 "아니요."하고 대답을 한다. 아마도 여기 앉아 계신 분 중에 하느님을 싫다고 하거나 예수님을 싫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분을 믿는다. 성모님도 하느님을 믿었다. 그런데 우리는 같은 믿음을 갖고 있고 그리고 하느님을 다 믿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삶의 모습이 다를까? 그것은 왜 일까? 믿는 것은 같은 데 말이다. 그것은 그분의 믿음에는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즉시 응답함"이라는 것이다. 그분의 믿음에는 이것이 있는데 우리의 믿음에는 이것이 없다.
(그분에게서 우리는 수 없이 많은 묵상 제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많은 레지오가 그렇게 많은 이름을 갖고 있을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러나 오늘은 성모님의 즉시 응답함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3. 즉시 응답함이란 무엇일까? 청년들과의 면담에서 나는 이러한 점이 가장 답답하다. 한참 면담을 하고 있다가 다 수긍을 하고 나서 이제 결단을 하여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한 사람을 이른바 회두시키기 위해서 갖은 감언이설로 그를 꼬시게 되는데 결단을 순간이 오면 아주 환장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성당 좀 잘 나와라." "(학생들은) 지금 학원가야 해요. 시험이예요. 엄마가 나중에 나가래요. 나중에 학교 졸업하거든요." "(고3 아이들) 학교 들어가거든요." (학교 활동에 빠지고 친구들과 노느냐고 정신 없는 아이들) "좀 들 바빠지면요. 지금 학교가 바빠요." (고학년은) "지금은 취직을 걱정할 시간 이예요." 자기 계획에 언제 성당에 나갈지 다 계획에 잡혀 있다는 건데 그 전에 죽으면 어떻게 되. 그때까지 산다는 보장 있어. 나중에 그러면 장가가면 안 바쁜가.....?
더 저를 환장하게 하는 대답은 "지금은 잘못한 일도 너무 많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깨끗해지고 마음의 준비가 되거든 나깔께요." 그지 같은 놈. 그래 잘났다. 하느님 앞에서 떳떳해 질 수 있는 모양인데 그래 잘 났다. 잘 났어.
4. 어른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 아이가 고3이라서 그러는데 학교 가면 성당에 보낼께요." 그 아이 학교 가도 절대로 성당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한 경우 부모는 또 와서 이렇게 한탄을 한다. "신부님 아이가 대학에도 들어갔는데 성당에 나가지 않아요. 좀 어떻게 해주세요." 나원 참 기가막힌 일이다. 일 있으면 성당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친 사람이 누군데 지금 와서 신부 보로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남자 어른들은 말을 한다. "좀 나이 들고 안정이 되면 성당에 나갈께요. 지금은 벌어먹고 살기가 너무 바빠요." "나중에 돈 벌면 시골에 작은 성당 하나 봉헌하는 것이 저의 꿈이랍니다. 대신 제 마누라하고 아이들은 성당에 꼭 가라고 제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는가? 십중팔구는 아이들은 머리가 크자마자 냉담하고 나중에 운이 좋으면 그 부인만 겨우 신앙생활을 유지하게 된다. 그리고 또한 그가 나이 들어서 성당에 나오는 일도 없으면 더욱이 그가 성당을 지어서 봉헌하는 일은 더더욱 생기지 않는다.
5. 결론은 이것이다. 나중에 뭐 한다는 놈 하나도 안 무섭다는 말이 있듯이 나중에 성당 나오고 믿음 생활하겠다는 놈은 다 거짓말쟁이이며 또한 그렇게 자녀에게 가르치는 부모도 다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물에 빠져죽을 거짓말쟁이라는 것이다.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니다. 신앙은 숨과 같아서 지금 쉬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것이다. 돈벌면 숨쉬고 바쁘지 않으면 숨셔라. 한 번 해봐라 살 수 있는지......
6. 우리는 성서에 나오는 의인들 중에 아브람함을 잘 알고 있다. 창세기는 우리에게 이러한 말을 전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아브람함에게 말을 하였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기 12,1) 하느님께서는 이 말씀으로서 75이나 된 노인을 죽음의 땅인 광야로 불러내신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느님께서 하라는 일이니 안 할 수 는 없고 그러나 "하기는 하지요" 하고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댈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야훼께서 분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창세기 12,4)라고 성서는 말을 하고 있다. 그는 어떠한 이유도 대지 않고 즉시 야훼의 말씀에 응답을 한 것이다. 잠시의 보류도 없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 것이다.
이사악을 잡아 받치라는 명령의 받았을 때도 그렇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종과 아들 이사악을 데라고 제물을 사를 장작을 쪼개 가지고 하느님께서 일러주신 곳으로 서둘러 떠났다."(창세기 22,3) 마치 아들을 잡아 받이는 것이 아주 흥겨운 일을 하러 가는 듯이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그는 길을 떠났던 것이다. "하느님 지금 고3입니다. 대학가면 잡아 받치지요."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아"하고 부르시면 항시 "어서 말씀하십시오"(창세기 22,1)하고 대답을 했다. 이것이 바로 믿음 인 것이다.
7. 그러면 성모님은 어떠신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기를 성모님의 믿음을 이 세상에 구원을 나아주신 믿음이라고 한다. 성모님이 처음으로 그 구원을 믿었던 것이다.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에게 와서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 할 때 성모님은 즉시 대답을 한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 그분은 이렇게 즉시 응답을 하였던 것이다.
8. 그러나 이렇게 대답을 할 수도 있다. "가브리엘 천사님 제가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처녀가 애를 갖으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제가 요셉과 결혼을 한 다음에 그 일이 생기게 되면 저도 안전할 뿐만 아니라 내 안에 계실 그분도 안전 할 것입니다. 또 혹시 다른 사람이 눈치를 채면 곤란할 수도 있으니 제가 요셉과 결혼을 한 후 다른 곳에 잠시 이사를 가는 시간을 주시면 더 완전한 준비가 될 것 같군요. 그리고 제 나이가 너무 어리잖아요." 얼마나 일리가 있는 말인가. 아마도 이렇게 말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모님은 "돌에 맞아 죽을 것"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하느님이 원하심으로 지금 그분은 "예"라고 응답을 하는 것이다.
9. 하느님은 우리가 지금 "즉시 응답"하기를 원하신다. 믿음에서 "즉시 응답함"을 빼버린다면 그 믿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여러분들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기 바란다. 나는 즉시 응답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우리가 지옥에 가게 된다면 그 이유 중에 상당한 이유가 바로 우리가 즉시 응답하지 않는 신앙 생활을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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