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따뜻한 가슴으로 남을 수 있는 삶]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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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선환 | 작성일1999-09-23 | 조회수2,624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따뜻한 가슴으로 남을 수 있는 삶> 하깨 1,1-8, 루가 9,7-9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갈릴래아 땅의 영주였던 헤로데는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두 가지 생각을 갖게 됩니다. 하나는 예수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만나고 싶다는 것은 예수에
대한 소문을 확인해 보려는 것이었고, 두려움을 가졌다는 것은 자신이
목베어 죽인 요한이 살아난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헤로데의 행위를 통해서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되짚어 볼
수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세상에 살면서 어떤 품위를 지니고 살아가겠
는가 하는 점이 그것입니다.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요, 둘째는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며, 셋째는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은 스스로가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사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때문에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을 때 몹시 서운한 기색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와는
반대로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찾아줄 때 우쭐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습
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자신이 잘났고 자기
홍보를 잘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세상이 그를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하
기 때문이라는 쪽이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또한 세상을 살면서 잠깐
두각을 드러냈다가는 이내 한쪽으로 사라지는 별똥 같은 인생이 있는가
하면, 죽음으로써 비로소 명성을 얻는 인생도 있습니다. 또한 아무런
두각 없이 사라져가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살아서 얻은 명성이 죽어서
더욱 빛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인생사를 논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것은 각 사람
이 현재 주어진 자신의 삶을 피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느
냐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현재들이 모아져서 한 사람의 인
생 역정을 이룬다는 것을 전제할 때 [지금, 여기서] 주어지는 나의 삶
을 미칠 것 같이 처절하게 살아가지 않는다면 아무도 나는 최선을 다했
노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내가 내 삶에 철저하게 집중
할 수 있을 때에는 다른 사람으로 인해서 자존심을 상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다른 사건으로 인해서 체면을 잃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조상들은 풍류를 아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풍류란
유유자적하고 기품이 있는 삶, 품위 있는 삶을 살고자 했던 조상들의
삶의 철학을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 한 가지를 하더라도 욕심
에 이끌리는 인간의 본성을 따르기보다는 절도 있고 품위 있는 나름
의 철학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면 분명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품위에 신앙을 전제로 한 사랑의
삶이 어우러질 때 우리는 아버지의 뜻에도 충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기억되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고자 할 때, 인생의 황혼에서 우리는 자연
스럽게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 살아서도 죽어서도 빛을 내는 사
람, 곧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아갔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목숨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기보다는, 세상을
떠났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따뜻한 가슴으로 남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머무는 세상이 그립습니다. 아멘.
선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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