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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삶(10월 4일)
작성자오창열 쪽지 캡슐 작성일1999-10-03 조회수2,647 추천수3 반대(0) 신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꼬 기념일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성인입니다. 그는 1182년 아시시에서 태어났고, 아버지 베드로 벨라도네는 큰 상인이었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는 신분에 맞는 교육을 받았으며 매우 활발한 성격이었고 방종하기까지 했었지요. 돈을 물같이 쓰며 동네 청년으로부터 두목으로 행세했으며 제 멋대로 놀아났습니다. 그렇다고 무자비하지는 않았고 인정이 많아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어머니 피까는 신심이 깊어 그를 위해 기도했으나 아버지는 아들의 세속적인 인기를 흐뭇해하고 아들에게 막대한 재산을 물려줄 심산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싸움터에 나아가 적에게 잡히게 되고 또 중병으로 눕게 되었는데요. 그 때부터 마음에 일대 변화가 일어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거액의 애긍을 하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황폐된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기도할 때였습니다. 거기에 있는 십자고상에서 "프란치스코야,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 세워라."라는 말씀을 듣게 되지요. 그는 그 성당이 지금 기도하고 있는 다미아노 성당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가서 귀중한 물건을 가져다 팔아서 본당신부에게 성당을 고쳐달라고 내 놓았지요. 그러나 본당신부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돈을 성당 안으로 던지고 돌아 왔다고 합니다. 여행 중이던 아버지가 돌아 와보니 아들의 마음이 변하게 된 것에 크게 분노했으나, 아들은 아버지보다 하느님의 뜻을 더 중하게 여겼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구석방에 가두어 놓고 성당에 가서 돈을 되찾아 왔습니다. 그래도 뜻을 굽히지 않으므로 아버지는 아들을 내쫓을 생각으로 주교님한테 끌고 갔습니다. 그러자 프란치스코는 소지품 전부와 의복까지 아버지에게 돌려주며 "지금이야말로 참으로 하느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때부터 그는 가난을 귀하게 였다고 합니다. 아무 것도 가지는 것을 원치 않고 옷도 되도록 남루한 것을 걸쳤습니다. 특히 1209년, 성당에서 미사 중에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 것이며 식량자루나 여벌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 나서는 성경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이런 프란치스코의 생활에 감동되어 뀐따바레의 베르나르도라는 상인과 에디지오, 까다니의 베드로라는 법학자 등 세 명의 동료를 얻게 되는데요. 그 후에도 그를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 열두 명에 이르게 되지요. 그 후 그는 로마에 가서 교황의 허가를 청합니다. 교황 인노첸시오는 그들의 너무나도 엄격한 생활에 놀라 주저하였으나 꿈에 프란치스코가 쓰러져 가는 교회를 받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인준하며 강복하고 강론할 사명을 그들에게 맡겼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작은 형제회]라는 수도원을 아시시 근처에 있는 뽈치운꾸라에 세웠습니다. 베네딕또 수도회로부터 얻은 것이었지요. 그 후 형제들의 수는 점점 늘어났는데요. 그 중에 아시시에서는 명문 출신인 한 처녀가 많은 감동을 받고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초라한 옷을 받고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 처녀는 바로 글라라였습니다. 여기서 글라라 수녀회가 생깁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수도회에 들어오지는 못하지만 여러 직업을 종사하면서도 수도 서원을 지킬 수 있는 프란치스코 재속 3회를 만듭니다.

 

 그는 나중에 회교도의 개종을 위하여 이집트에 가서 순교할 것을 열망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다시 이태리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자주 병을 앓게 되었으므로 총장직을 까따니의 베드로에게 물려주고 엄격한 고행과 기도로 보냈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는 예수님께서 자주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신 것처럼, 기도하면서 주님의 수난을 따르기를 원했습니다. 1224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고 있을 때 예수님의 오상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큰 은혜임은 틀림없으나 고통스런 시련이기도 했지요. 그는 거의 죽을 무렵까지 설교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상을 받은 후로는 극도로 약해져서 아시시에서 뽈치운꾸라로 옮겨져 44세로 선종합니다. 그는 죽을 때 "나를 맨 땅에 눕혀 달라." 하고 말했다 합니다. 십자가상 그리스도와 같이 가난하게 죽기를 원하였기 때문이었지요. 그는 출중한 덕행과 기적으로 사후 3년이 지난 1229년에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복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천함으로써 교회를 놀라게 하고 교회에 영감을 불어 넣어준 [작고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또 아무 제한이나 자존심 따위도 없이 실제로 실천함으로써 복음대로 산 성인의 삶을 우리는 조금이라도 닮을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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