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을 두려워함이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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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선환 | 작성일1999-10-14 | 조회수3,019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하느님을 두려워함이란> 로마 4,1-8; 루가 12,1-7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 가운데 두려움이라는 덕목이 있습니다. 이 두려움은 공 포심에 질려서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경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두려움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존재 자체를 주관하시고, 우리들을 구 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기에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에서 우러 나오는 두려움이야말로 우리들이 경건한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들의 마음이 자극을 받게 되면 흔히 표현하 기를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받은 사람은 찔리는 마음 때문에 괴로워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 신들이 저질러 놓은 잘못에 대해서는 애써 감추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습니 다.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청하기보다 감추기를 원한다는 말은 사람들에 대해 서 그렇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하느님 아버지를 속일 수는 없는 일일 테니까요. 이렇게 해서 사람들을 속이고 잘못을 감추며 지 나갈 수 있을지라도, 그리고 하느님을 속일 수 없음을 알면서도, 자신의 피치 못 할 사정을 애써 나열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시키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속성 이겠지요.
그런데 이러한 속성을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우리들이 취하고 있는 이러한 자세 는 그리 정당하지 않을뿐더러 별로 신통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잘 속여서 죽을 때까지 드러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차지하는 부분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겠습니까? 만약에 우리들의 이 세상 삶이 영원한 것이라면 또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지상 생활은 숨이 붙어 있 을 때까지라는 단서 속에서, 즉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으니 이러한 방법은 그리 좋은 시도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우리들이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부분일 것입니다. 기가 막힌 방법으로 사람을 속일지라도 하느님께서만큼은 우리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헤아리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그 래서 예수님께서는 일찍부터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은 더 어떻게 하지 못하는 자 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위선이라고 하는 것은 궁극에 가서는 그리 효과가 없습니다. 사람들의 은밀한 생각이 결국에는 밝혀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궁극적 인 힘을 가지고 계시는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우리들은 하루를 살면서 사람에게 잘 보이고, 사람을 잘 구슬려서 좋은 몫을 얻어내고, 사 람을 위해서 어떤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을 믿는 사람답게 하느님 을 올바로 두려워하기 위해서, 곧 하느님을 경외하고,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해서 우리들 삶의 모든 포커스를 맞추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입 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낱낱이 다 세어 두셨다. 너희는 그 흔한 참새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느냐?"
선환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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