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위령의 날(11월 2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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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창열 | 작성일1999-11-02 | 조회수2,744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위령의 날
11월은 마치 인생의 황혼기와도 같습니다. 벼가 무르익어 황금빛 들녘이었다가 수확을 마친 들녘은 휑한 느낌을 줍니다. 11월은 교회 달력의 마지막 달이기도 합니다. 이런 시기에 교회는 위령 성월을 지내며 죽음을 묵상합니다.
통계를 보면, 하루에 15만 명이 세상을 떠난다고 합니다. 언젠가 나도 그 중에 한 명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죽음에서 제외된 사람은 우리 중에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죽을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모든 인간의 숙명입니다. 죽음은 모두에게 예외 없이 찾아오는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는 말하기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죽는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며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죽을 수 없습니다. 죽음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죽음에 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죽는 일보다 사는 일에 더 매달려 있습니다. 삶은 곧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한데, 죽음의 문제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삶의 문제만을 붙들고 씨름합니다. 그러다가 정작 살만하면 죽음을 맞게 됩니다. 삶과 죽음은 반의어가 아니라 동의어입니다. 삶이 곧 죽음이고 죽음은 영원한 삶으로 가는 길목인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살면서도 죽음의 문제를 염두에 두고 또한 죽음을 잘 준비하면서 생활하면 더욱 깊고 진지한 삶을 이룰 수 있습니다.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이 사는 것이고 산다는 것은 곧 죽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위령 성월을 지내면서 앞서 죽은 이들 특히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권장합니다. 죽은 이들을 위해 공로를 나눌 수 있다는 교회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구약의 마카베오 후서 12, 43-46에 보면, 전장에서 전사한 군인을 위해 하느님의 성전에서 제사를 바치게 했습니다. ② 로마의 통치 아래에서 박해를 받던 초대교회 신자들의 유일한 피난처였던 지하 공동묘지(까타콤바)의 비석에도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죽은 이들이 속히 죄 사함을 받아 천국의 영원한 행복에 들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③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50항에서는 "교회는 그리스도교의 초기부터 대단한 신심으로 죽은 이들을 기억하였고, 죽은 이들이 죄의 사함을 받도록 그들을 위하여 간구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④ 교회는 매 미사 성제 때마다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위령 미사 때에는 "세례를 통하여 성자의 죽음에 동참하였으니 그 부활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고, 매 미사 때에도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교우들과 세상을 떠난 다른 이들도 모두 생각하시어, 그들이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뵈옵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렇듯, 교회는 초세기부터 지금까지 죽은 이들을 이해 기도해 왔고 또한 기도할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위령 성월’인 11월 1일부터 8일까지 열심한 마음으로 묘지를 방문하여 기도하고,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신자들은 날마다 한 번씩 연옥 영혼들에게만 양보할 수 있는 전대사를 받습니다. 그리고 고해성사와 영성체, 교황의 지향에 따라 주님의 기도와 사도신경을 바치면 전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 완벽한 삶을 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모두가 인간이 지닌 나약함과 부족함, 결점과 결함을 그대로 안고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갑니다. 예수님은 "네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풀려나지 못할 것"(마태 5,26)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죽은 모든 이들은 그 부족함을 기워 갚고 잘못을 정화하는 단련의 시기, 곧 연옥을 거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연옥은 ’정화되는 곳’(Purificatorium)이라는 뜻입니다. 바로 그 곳에서 정화와 단련을 받고 있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보속과 희생을 나누는 것은 현세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의무인 동시에 사랑의 실천이기도 합니다. 정화와 단련 중에 있는 연옥 영혼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와 선행은 구원자이신 하느님께 영광이 되며 동시에 우리 자신에게도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 준주성범 1권 23장 1절에 보면, "미구에 네게는 이런 사정이 닥쳐오리라. 그러니, 지금 네가 어떠한 처지에 있는지 살펴 보라. 오늘 있던 사람이 내일은 보이지 않는다. 눈앞에 보이지 않게 되면, 정신적으로도 쉽게 잊어버린다... 네 양심이 편안하다면, 그렇게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피하는 것보다, 죄를 피하는 것이 더 낫다. 오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내일은 어떻게 준비가 되어 있겠느냐? 내일은 일정치 못한 날이다. 내일의 태양을 네가 볼런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어느 묘비에 새겨져 있는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란 말처럼,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갈 때 삶을 가장 가치 있게 꾸밀 수 있고 죽음을 가장 아름답게 준비하는 삶이 되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위령의 날인 오늘,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연옥의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의 공로를 통하여 연옥 영혼들이 하느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도록 기원하는 마음으로 미사에 참례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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