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 하나를 대할 때 2 | |||
---|---|---|---|---|
작성자고은경 | 작성일1999-12-03 | 조회수2,292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영화를 봤습니다.
가든 오브 에덴.
그곳엔 인간 예수님이 계셨고, 그리고 그 인간미에 감동받았습니다.
가장 인상깊은 장면중의 하나가 눈먼이를 고쳐주시는 장면입니다.
손에 정성껏 진흙을 묻히고 그 맹인의 눈을 그 양손으로 정성껏 누르더니,
"보입니까?"
희뿌연 형상의 예수님을 겨우 응시하는 맹인 왈,
"잘안보이는데요."
다시 한번 진흙을 묻혀 또 그 손으로 맹인의 눈을 다시 만져 주시며,
"이젠 잘 보입니까?"
"예, 이젠 잘 보입니다."
.....
왜 인상깊은가 생각해 봤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로만 듣던 기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도깨비나 마술사처럼 현란하고 순간적인 기적이 아니라 처음에
시도했는데 잘 안되서, 나중에 또 시도해서 완성하는 그 인간의 면모를
볼 수 있었기에 더욱 그분을 친숙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도 그분처럼 매사에 그리고 사람을 만날때마다 그렇게 정성스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일 수만 있다면 그 것이 제 안에 예수님을 모시는
것이며 곧 마음의 감동을 일으키는 전교가 아닐까합니다.
여기에 빠질수 없는 것이 실천력일 것입니다.
그 실천력, 적어도 용기를 가지고 하느님께 배운대로 실행하는 그런 힘을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겁함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전 제가 비겁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슬퍼하던 중에 책을 읽었는데 이런 구절이 절 꽁꽁 얼게 만들었습니다.
"비겁함의 반대말은 용기가 아니라 신앙심이다."
정말 피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그 고심은 날로 깊어졌습니다. 그리고 낮은 나를 다시 쳐다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행복해졌습니다.
왜냐하면 나날이 제가 주님의 은총속에 깨달을 수 있고 감사히 생각할 수 있고 자각하고 느끼고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절 기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