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겸손의 잔을 마셔야 한다.(사순 2주 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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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0-03-22 | 조회수3,033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2000, 3, 22 사순 제2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예레18,18-20 (백성이 예레미야를 잡으려고 하다.)
이 백성이 수군거립니다. "예레미야를 없애야겠는데 무슨 좋은 계책이 없을까? 이 사람이 없어도 법을 가르쳐 줄 사제가 있고 정책을 세울 현자가 있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려 줄 예언자가 있다. 그러니 이자를 그가 한 말로 때려잡자. 이자의 말마디마다 조심하여 듣자."고 합니다. 주님, 제 말을 잘 들어 주십시오. 원수들이 고발하는 저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이런 배은망덕이 어디 있습니까? 이 목숨을 끊으려고 함정을 팝니다. 제가 당신 앞에 지켜서서, 이 백성을 잘 되게 하여 주십사고 아뢰며, 분노를 거두어 주십사고 아뢰던 일을 잊지 마십시오.
마태 20,17-28 (수난에 대한 세번째 예고, 섬기는 자가 다스린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도중에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불러 조용히 말씀하셨다.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대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의 손에 넘어가 사형 선고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방인들의 손에 넘어가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며 십자가에 달여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예수께 왔는데 그 어머니는 무엇인지를 청할 양으로 엎드려 절을 하였다. 예수께서 그 부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은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고 부탁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 형제들에게 "너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느냐?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마실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도 내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편과 내 왼편 자리에 앉는 특권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열 제자가 그 형제를 보고 화를 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에서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로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야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묵상>
겸손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육화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서 최고의 사랑을 만날 수 있으며 완전한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겸손은 힘 센 사람 앞에서 보이는 약한 사람의 비굴함과는 전혀 다릅니다. 자신에게 돌아올 특정의 대가를 바라고 취하는 행동 양식도 겸손과는 거리가 멉니다. 사랑하기에, 품에 안고 싶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는 것이 겸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겸손하다는 칭찬을 듣고 싶은 마음도, 자신에 대한 인정도 참으로 겸손한 사람에게는 하나의 헛된 욕망에 불과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셔야 할 잔, 그러기에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도 함께 나누어 마셔야 할 잔이 겸손의 잔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백성들을 위해 처절히 간구했건만 오히려 자신을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울분을 삼켜야 했던 예레미야 예언자의 한탄의 잔 역시 겸손의 잔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대가를 바라는 자기 낮춤도 겸손이라고 한다면, 이 겸손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겸손 때문에 다른 이들이 자신을 업신여기고 모욕한다면 과연 겸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참된 겸손은 어찌보면 우리의 인간적인 노력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덕목이요, 하느님의 은총으로 생활화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 겸손해야만 할까요? 겸손한 사람만이 다른 이들을 편안하게 품에 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기심과 경쟁이 판치는 인간 세상을 하느님께서 주시는 화해와 평화로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사회 안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지배 관계가 항상 있습니다. 한 개인은 여러가지 관계의 사슬에서 때로는 지배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피지배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능하면 지배자의 위치에 서서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고, 이 욕망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극히 정상적인 삶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배를 포기해야만 인간 해방의 세상, 주님의 은총으로 주어질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일구어 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여정을 통해 지배의 포기, 나눔과 섬김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 사순 시기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이 삶을 묵상하며, 아무 두려움없이 이 길을 걸어가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제 바로 옆에서 함께 살아가는 형제 자매들과의 관계 안에서 보이지 않게 드러나는 지배욕을 살펴보고 포기의 삶, 나눔과 섬김의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회개요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됨의 첫걸음일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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