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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먼저 이웃이 되어 주라
작성자김민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0-10-09 조회수2,065 추천수6 반대(0) 신고

 율법교사라고 하면 이스라엘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지니고 사람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는 계층의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의 성인식이나, 결혼 등의 일상사에서 뿐만 아니라 그 지방의 행정, 정치를 포함한 생활 전반에 있어서 눈에 보이거나 또는 보이지 않는 힘을 지니고 행사하고 있다 합니다. 현대에 있어서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지금 보다도 훨씬 신중심적이고 그에 관련된 법과 풍습이 많았던 2000년전 이스라엘 사회에서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던 그들의 위치는 얼마나 높았겠습니까.

 

 그런데 복음서에 종종, 이들 율법교사들이 예수님의 속을 떠보려고 질문을 하는 장면이 등장하곤 합니다. 오늘도 그들은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하고 묻고 있습니다. 불신과 교만에 가득찬 그들은, 이렇게 이와 같이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는 이에 예수님깨서 어떻게 대답하시는지 보고, 그가 과연 자기들을 능가하는 학식이 있는지 시험하고, 대답의 내용이 명백히 오류가 있거나, 자기들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기라도 하면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조롱하거나, 음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언제나처럼 침착을 잃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율법서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었느냐?"하고 반문하십니다. 그들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에수님께서는 "옳은 대답이다.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살 수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역시 자신의 논리를 앞세우지 않으시고, 오직 한분이시며, 만유위에 높으신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로써 당신께서는 교만한 그들에게 겸손을 가르치심과 동시에, 성서와 율법을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자의직으로 해석하던 그들의 관행에 일침을 놓으려 하신 것 같습니다. 요즘 말로, ’기초와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씀 같습니다. 정답은 이미 나와 있는데, 그것대로 실천하며 살기가 힘들어, 억지로 토를 달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대답이 끝나자마자, 율법교사는 또,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하고 묻는데, 이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님께서는 저 유명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요지는, 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당해 거의 죽게 되었는데, 이를 보고, 한 사제와 레위 사람은 그냥 지나쳐 버린 반면, 사마리아 사람은 정성껏 치료해 주고 여관까지 데려가 간호해 주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물으셨습니다. "자, 그러면 이 세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율법교사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짧은 비유와 말씀이지만, 실로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유에서, 당시 사회의 높은 신분이었던 사제와, 평판이 좋았다고 할 수 있는 레위 사람을 몰인정한, 이기주의자로 묘사한 것은 지배계층과 가진 자들의 위선을 고발한 것이었고, 천시받던 사마리아 사람을 의인으로 그린 것은 피지배층과 못가진 자들을 당신께서 스스로 위해 주시기 위함이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부와 명예, 권력 등 인간이 스스로를 구별짓는 잣대는 하느님앞에서는 무의미한 것이며, 오직 당신 뜻대로 사는 것만이 당신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보여주려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에 하신 예수님의 질문에 나와 있는 것 같습니다.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율법교사는 처음에 분명,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물었는데, 이를 풀어서 말한다면, ’우리가 이웃을 사랑해야 겠는데, 사랑할 만한 이웃은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의 뜻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일부로 그 질문의 의도를 무시하고, ’누가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는 강력한 명령과도 같은 질문을 던지십니다. 이로써, ’너희는 사랑할 이웃을 찾기보다는 스스로가 사랑하고 사랑받을 만한 이웃이 되어주라’는 말씀을 하시려 했던 것이 아닐까요. (’먼저 다가가라’는 이 말씀은 최근 교회에서 강조하는 ’찾아가는 선교’와 관련하여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기본적이고 전통적인 제규정과 의무의 소극적 준수에만 머물지 말고, 당신께 나아가는 선, 당신 뜻대로의 삶, 그것의 이행을 더더욱 바라시는 것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보여주신 정답 앞에 애써 눈감으려는 저희를 용서하시고, 당신께서 원하시는대로의 삶을 그대로 살아 갈 수 있는 용기와 은총을 저희에게 내려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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