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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원하기만 말고 구하라
작성자김민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0-10-12 조회수2,281 추천수6 반대(0) 신고

 어떤 사람에게 한밤중에 친구가 찾아왔는데 대접할 음식이 하나도 없어서 그는 또 다른 친구집에 가서 음식을 꾸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자 이 친구는 자기와 그의 아이들이 모두 자고 있으니 일어나서 음식을 줄 수가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누가 봐도 그 친구 좀 야박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꾸어 달라고 조르고 귀찮게 굴면 결국 그 친구도 문을 열고 음식을 나누어 줄 것이라는 것이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말그대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하느님을 조르고 귀찮게 하라’는 의미는 분명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을 내어 주시지 않으실 리 없고, 우리가 아무리 필사적으로 그분을 귀찮게 한다손 치더라도 그정도에 귀찮음을 느끼실 그런 불완전한 분이실 리 만무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것을 왜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그저 ’원하기’만 하고 있을 뿐, ’구하기’까지는 하지 못하는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진심으로 원하는 사람은 마땅히 일어나서 구하여야 할 터인데, 우리는 편히 앉아서 손에 쉬이 잡히는 것만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것마저 쉽게 되지 않는다고 늘 불평불만이지만 말입니다.

 

 오늘 비유의 말씀은 분명, 이 ’원하는 것(to want)’과 ’구하는 것(to seek)’과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남자가 친구에게 접대할 음식이 없어서 다른 친구에게 찾아가 음식을 꾸는 것까지는 바로 ’원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바로 거기까지만 가서 그친다고 한다면 말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서 ’결핍에 따른 필요로 함’일 뿐이지, ’해결을 위한 적극적 행동’은 될 수가 없으며, 따라서 여기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기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일 것입니다.

 이에 반해, 거기서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부탁하고, 그러한 부끄러움을 감수하는 행위는 바로 ’구하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강한 의지와 용기,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정당성은 물론 실제적인 행위가 있어야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갓낫 새새끼들이 목을 있는 대로 다 빼고 허공에다 죽어라 악을 써대는 것처럼, 그리고 새끼돼지가 어미 젖을 찾으려 자기코로 형제들 사이를 비집고 다녀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해야만이 비로소 제대로 한번 ’구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야 어떻든.

 

 예수님께서 야박하게 거절하는 친구를 비유로 드신 것도, 하느님께서 그러하시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구하는 것’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나타내 보이시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진정 가치있는 것을 원한다면 우리는  이 어려움을 무릅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자식들에게 그러하는 것처럼, 사랑에 빠진 이들이 자기 연인에게 그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때론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만약, 눈먼 우리가 아름다운 그녀 또는 그를 사랑할 때의 열정과 순순함으로 하느님을 찾았다면, 우리는 벌써 당신을 뵙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그런 불경스런 생각...

 

 하지만, 지금 저를 보면...한심할 뿐입니다. 마음은 온통 잡생각들로만 가득하고, 앉아서 당신께 손내밀고 있다는 표현도 제겐 과분하게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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