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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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은행알을 줍는 시골신부 이야기
작성자황인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0-10-29 조회수2,758 추천수27 반대(0) 신고

오늘 주일미사를 마친 오후 내내 성당마당에 있는 은행나무에서 은행을

 

따서 줍는 일을 하였다. 82세 되신 김동환 호노라도 할아버지와 68세

 

되신 노광한 니꼴라오 할아버지와 함께. 네 시간 동안 쌀가마니로 두

 

포대를 능히 넘는 양을 주워 담았다. 마침 미사에 참석한 군인 사병이

 

도와주어서 은행나무를 터는 일이 수월했다. 작년에는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기도 전에 서리가 와서 못 느꼈는데, 올 해는 은행 따는 일이 정말

 

낭만적이었다. 노란 은행잎이 눈처럼 내리는 사이로 후두둑 떨어지는

 

은행알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다.

 

미사에 참석했던 할아버지들은 오늘이 마침 장날이어서 대포 한 잔

 

하시러 모두 가시고, 할머니들은 장구경 하러 일찍 가시는 바람에 내가

 

할 수 없이 은행알을 줍지 않으면 안되었다. 쭈구리고 앉아서 네 시간

 

동안 일을 하고 나니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뻐근하다. 그리고 손에서는

 

은행알을 싸고 있는 것에서 나오는 똥냄새가 배어서 냄새가 난다.

 

젊은 내가 이렇게 힘이 든데 연로하신 두 할아버지는 오죽 힘드셨을까?

 

그런데도 두 분은 그 힘든 일을 기쁘게 마치고 돌아가신다.  

 

나는 이 본당에 부임해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효도하는 신부로

 

살고 있다고 자부하여 왔는데 어르신들에게 이런 일을 시켜

 

드리는 것이 잘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다만 노인들에게 성당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 성당은 노인 교우들 천국이다. 제의방 담당은 73세 되신 원 바오로

 

할아버지시다. 벌써 5년째 제의방을 맡고 계시는데 미사 시간 두 시간

 

전에 어김없이 오셔서 준비하고 기도하면서 나를 기다리신다. 웬만한

 

수도자도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다. 또 평일미사 복사는 72세 되신

 

표 안셀모 할아버지시다. 이 두 분이 없으면 평일 미사를 할 수 없다.

 

레지오 단원 20여명 중에서 70세 이상 할머니가 14명이다. 나는 미사

 

후에 이 분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드린다. 이 분들이 없으면 나는 이

 

시골 본당에서 신부 노릇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80세가 넘으신 할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면서도 별로 죄송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이 분들이 우리 성당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은행알들을 어떻게 처분할까를 할아버지들께 여쭈어보았다.

 

"이 은행들을 어떻게 할까요?"

 

그러자 할아버지들은 한결같이

 

"주일 미사에 오시는 손님들께 선물로 드리세요."

 

하고 대답하신다.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씨이신가?

 

사실 성당을 새로 지었지만 빚도 없고, 많은 손님들이 오셔서 주일 미사

 

헌금도 넉넉하기 때문에 늘 감사한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고

 

생각된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할아버지들와 시골신부가 정성스럽게 딴 은행알을

 

미사에 참석하시는 타본당에서 오신 교우님들께 선물로 드릴 수 있으니

 

말이다.

 

연로하신 나이에 힘들게 일하시면서도 당신들이 조금이라도 갖고 가시

 

겠다는 욕심이 없으신 두 할아버지들께 멋진 인생을 배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오래 오래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세요. 두 분 할아버지!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들의 말씀대로 이 은행알을 다음 주일 오후에는

 

성당 앞 개울가에 가서 깨끗이 닦은 다음 며칠 동안 말려서 주일 미사에

 

오시는 손님들께 조금씩 선물로 드릴 예정이다.

 

11월 12일 주일미사 때에 저희 성당에 오시는 분들은 정말 땡 잡을 것

 

같다.

 

노랗게 떨어진 낙엽이 엄마품 처럼 아늑하게 느껴지는 주일 오후이다.

 

http://www.artchurc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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