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짜장면 두그릇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1-10-12 조회수2,665 추천수27 반대(0) 신고

고등학교 시절의 일입니다. 그때를 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배고팠던 기억입니다. 모두가 없이 살던 시절, 왕성한 식욕을 주체하지 못하던 우리는 늘 배가 고팠습니다. 그렇다고 늘 굶고 다닌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밥 먹고 돌아서는 즉시 배가 고파오곤 했습니다.

 

한번은 제게 생각지도 않았던 돈이 생겼습니다. 하교 길에 친구와 중국 집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늘 먹고 싶었던 짜장면을 시켰습니다. 그것도 곱배기로. 그런데 문제는 둘 다 곱배기를 시켜서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속이 허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곱배기 한 그릇씩 더 시켜먹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그럴려니 식당에서 서비스하는 주인집 딸 앞에 창피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일단 그 중국집을 나와서 또 다른 중국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서 또 다른 짜장면 곱배기를 한 그릇씩 먹었습니다.

 

그 일을 돌아볼 때마다, 혼자 속으로 웃으며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이 세상이 주는 인간적인 빵은 먹어도먹어도 늘 뭔가 허전하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이 주는 육적인 영예나 기쁨은 한 순간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인간적인 사랑 역시 늘 불완전하고 미완성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적이고 세속적인 모든 것들은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언제까지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빛깔을 잃어가고 그 의미도 상실해 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이 들으셨다면 섭섭해했을 말씀을 하십니다. "나를 낳아 젖을 먹인 사람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예수님은 서서히 오랜 기간 머물러왔던 작은 고을 나자렛을 떠나 더 큰 세상, 인류 구원이란 큰 목표를 향해 떠나가십니다. 아쉽지만 그간 자신을 지켜준 혈육과 고향을 떠나 험한 세상으로 나아가시는 것입니다. 이제 육신의 삶을 떠나 아버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영적인 삶에로 나아가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은 늘 가변적이고, 늘 한시적인 것입니다. 한때 제가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몰두했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이념이나 사상, 사람마저도 이제 세월과 함께 그렇게 까지 절대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때로 우리가 그토록 집착했고 추구했던 인간관계 역시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철저한 배신감과 실망감만 남게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제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는 것이 예수님 그분만이 영원하십니다. 그분의 말씀만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마르지 않는 샘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연륜이 더해갈수록 육신을 벗고, 세상을 벗고, 인간에 대한 집착을 벗는데 보다 익숙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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