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징하게도 질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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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3-12-16 | 조회수3,754 | 추천수42 | 반대(0) 신고 |
12월 17일 대림 제3주간 수요일-마태오 1장 1-17절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다음과 같다."
<징하게도 질긴>
세월이 흐르면 지워지겠지? 하고 생각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 상처들이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은 부끄러운 기억들, 잊고 싶은 사연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지는 지난 삶의 조각들은 마치도 깊은 상흔처럼 우리 마음 안에 새겨져 있지요.
"그만하면 됐으니 이제 좀 내려놓으시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게 마음 고생했으니, 이제 다 보속하신 거라"고 아무리 당부해도 사람들은 그때뿐 어느새 또 다시 가슴앓이를 되풀이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날의 부끄러움들은 아무리 잊으려해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저를 따라다닙니다. 과거는 하느님 자비에 맡기자고 새 출발해보자며 다짐하지만, "징하게도" 질긴 과거의 아픔들은 아직도 제 마음 한구석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아마도 인간이란 현재를 살면서도 과거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그래서 평생 자유롭지 못한 존재인가 봅니다.
젊은 시절, 미성숙함으로 인해 그어졌던 우리 인생의 빨간줄을 지우고 싶지 않은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한 순간의 판단 착오로 저질렀던 초대형 과실을 원점으로 되돌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상처가 있기에 한 인간이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허물이 있기에, 부끄러운 과거가 있기에 그로 인해 괴로워하기에 하느님 자비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태오 복음 사가는 예수님의 족보를 장황하게 나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성조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유다 역사 안에서 가장 뛰어난 왕이었던 다윗왕의 후손이었음을 자랑스럽게 밝히고 있지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족보 안에서 지우고 싶은 기록들도 지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족보에 등장하는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따라가다 보면 한 때의 행실이 너무도 부끄러워 그 이름을 지워버리고 싶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사가는 자신의 복음서 1장 1절에 그 부끄러운 이름들도 가감 없이 그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족보를 우리에게 소개하는 의도는 예수님께서 철저하게도 인간 세상 안으로 육화되었음을 주지시키기 위함도 있겠지만, 이를 통해 인간 역사란 족보란 늘 정갈하고 깔끔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이란 상처투성이 뿐인 여정인지도 모릅니다. 한 고비를 넘어서면 또 다른 고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고통은 없겠지?" 하고 안심하는 순간 어느새 또 다른 고통이 우리 옆에 다가앉습니다.
결국 인생여정에 상처는 필수입니다. 상처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말씀처럼 "상처 없는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진주도 상처가 있고, 꽃잎에도 상처가 있습니다. 장미꽃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그 상처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상처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장미가 아름다운 것은 바로 그 상처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처로 인해 실패로 인해 많은 것을 잃었으나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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