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산책 (12월 22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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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상대 | 작성일2003-12-22 | 조회수1,663 | 추천수17 | 반대(0) 신고 |
◎ 2003년 12월 22일 (월) - 대림 제4주간 월요일
[오늘의 복음] 루가 1,46-56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하셨도다.>
46) 이 말을 듣고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47)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렙니다. 48)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 50)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51)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53)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54)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55)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서 석 달 가량 함께 지내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마니피캇 - 예수의 노래
오늘 복음은 루가복음의 전사(前史) 중 네 번째 단락에 해당하는 "마리아의 노래"를 들려준다. "Magnificat anima mea Dominum..."(내 영혼이 주님을 크게 찬미하며...) 라는 시작부분의 첫 글자를 따 "마니피캇"(Magnificat), 또는 "천주 찬미가"로 불리는 마리아의 노래는 참으로 아름다우면서도 웅장하고 장엄하며, 가히 혁명적이고 깊은 신학적 내용을 담고있는 노래이다. 마니피캇이 마리아가 직접 읊었다고 생각하는 성서학자들은 거의 없다. 루가가 복음서를 집필하기 전에 이미 부활공동체가 예수의 인류구원사건을 기리기 위해 지어 불렀다는 것이 통설이다. 뿐만 아니라 일부 학자들은 구약시대 말기에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이 메시아 사상과 결부시켜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이와 유사한 노래를 읊었다고 주장한다.
마리아의 노래와 비슷한 내용의 찬가는 이미 구약성서에 있다. 엘카나의 아내이자 석녀(石女)였던 한나가 사무엘을 낳고, 아이를 야훼 하느님께 봉헌하며 바친 감사와 찬미의 기도가 바로 그것이다.(1사무 2,1-10) 사무엘을 통하여 한나의 입장은 완전히 바뀌었다. 자신의 처지가 이처럼 바뀌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그토록 원했던 아들을 얻었기 때문이지만, 한나는 이 모든 것이 야훼 하느님의 크신 은총임을 깨닫고 그분께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기도한 것이다. 물론 마리아는 한나와 같은 처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행한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이 비단 자신에게뿐 아니라 마리아 안에 잉태된 메시아를 통하여 온 세대에 베풀 것으로 깨달은 것이다. 메시아는 온 세대의 처지를 바꾸어 놓을 것이다. 사람은 있는 자와 없는 자로 구별된다. 있는 자는 부유하고 권세를 가졌으나 거만하고 교만한 자들이나, 없는 자는 비천하고 배고픈 이들이지만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거만한 자들을 내치시고 비천한 이들을 거두어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마니피캇의 내용은 앞으로 메시아 예수께서 세상에 대하여 펼치실 일이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이 일을 오늘 마리아의 입에 노래로 담아 주신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마니피캇은 분명 마리아가 부른 감사와 찬미의 노래이다. 마리아가 어떻게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까? 누구든 이런 생각을 한 번은 해보았을 것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저 소박하고 순진하기만 했을 마리아, 배운 것도 넉넉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마리아, 청년 요셉과 약혼하여 혼인날을 기다리며 매사에 조신(操身)하고 있었을 마리아가 어떻게 이런 엄청난 지식이 담겨있는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까? 사실은 우리가 마리아의 노래 때문에 놀라기 전에 어제 복음에서 엘리사벳의 마리아에 대한 칭송에서부터 놀랬어야 한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루가 1,42-45) 이 대목에서 우리는 약간의 억측이 담긴 주장을 했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는 순간 성령 하느님께서 태아인 요한을 시켜 이와 같은 칭송을 드렸다는 것이다. 즉 성령을 통하여 요한이 예수께 드린 칭송이었다는 말이다.
하느님의 은혜를 입은 엘리사벳이 요한을 잉태하고 여섯 달을 지내는 동안은 놀라움과 기쁨의 나날이었다. 엘리사벳은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다. 이전과는 달리 하느님 성령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고, 자기 안에 성령께서 활동하실 수 있도록 자신을 열어갔던 것이다. 마니피캇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마리아가 천사의 예방을 받고 메시아 탄생의 예고를 접하는 순간 한줄기 내적 광명이 그녀를 꿰뚫고 지나가며 그녀의 정신을 밝혀주었고 지식을 머리에 담아 주었다. 엘리사벳보다 마리아는 하느님께 훨씬 더 많이 자신을 열고 있었다. 그래서 마니피캇은 성령의 노래이며,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으신 메시아 예수의 노래인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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