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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떠나라
작성자강성진 쪽지 캡슐 작성일2004-01-27 조회수1,217 추천수7 반대(0) 신고

"떠나라"(루가 10,3)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말은 어제(1월 26일)의 복음 가운데 나오는 한 귀절입니다. 주님께서 일흔 두 제자를 뽑아 앞으로 찾아 가실  여러 마을과 고장으로 미리 둘씩 짝지어 보내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떠나라." 다소 명령조로 들리는 이 말씀을 왜 주님께서는 하셨을까. 흔히 그렇듯이 익숙한 일상 생활을 뒤로 하고 미지의 곳으로 떠나야 할 경우가 생기면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슴이 충만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과 주저함이 앞서기도 합니다.  더욱이 가서 해야 할 일이 부담스럽기라도 하면 더욱 그렇겠지요.

 

일흔 두 제자들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우선 그들도 인간이었기에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뽑힘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주님의 발걸음이 아직 닫지 않은 고장들을 찾아 다니며 ’병자를 고치고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는 것이라는 것을 듣고 나서는 기대와 걱정이 교차되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걱정과 근심이 더 컸을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재주나 능력으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우리가 찾아갈 고장의 주민들이 우리를 환대해 준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간다면 어디에서 묵으며, 누구를 만날 것인가?’ 등등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걱정이 되셨던 것 같습니다. 성서에 따르면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마치 어린 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구나." (10,3) 라고 말씀하셨다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스스로의 걱정과 제자들의 주저함을 단호하게 자르기라도 하듯 ’떠나라’하고 엄숙하게 말씀하십니다. 제자들도 이 말에 힘을 입어 평신도 사도직의 역사적 첫 걸음을 내딛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참으로 우리네 그것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일흔 두 제자를 파견하실 때도 그렇습니다. 우리 같으면 무슨 일을 새롭게 시작할 때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그 일에 착수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길을 떠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옷가지며, 먹을 것, 신을 것을 챙기는 것은 기본이요, 현지에 가서 숙식을 해결하고 일을 보기 위해서라도 돈을 마련해 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놓고 그냥 가거라. 가서 부딪혀라. 필요한 것은 가서 해결하라. 이런 저런 여행 준비에 신경쓰지 마라. 문간에서 기웃거리지 말고 네가 해야 할 일의 본질에 바로 들어가서 그 일을 바로 시작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 생각해봅니다.

 

마침 토마스 키팅 신부의 책을 보니 이에 대한 묵상이 있더군요. 그는 <그리스도의 신비>라는 책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예수의 방법은 마치 학생들을 물 속에 떠 밀어 넣는 수영 강사와 비슷하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완전히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명을 주셨다. 그분은 그들의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성공을 더욱 기뻐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렇지요.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선교의 시급성이란 측면에서도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가 늘 배우는 박상대 처장의 <복음산책>(1/26)에서 저는 멋있는 해석을 보며 기뻤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2절)는 예수님의 말씀이 일흔 두 제자의 파견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은 먼데 시간은 촉박하다는 뜻이다. 즉 예수께서 복음을 전해야 할 곳은 많은데, 종말론적 하느님의 심판이 목전에 왔다는 것이다. "추수" 라는 상징어가 사태의 심각성을 더해준다."

     

저는 제 나름대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봅니다. 만약 선교 상황의 시급성을 인정한다면 더더욱 여행 준비에 시간을 끌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당시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의 형편이 그렇게 넉넉했을 것 같지 않아 더욱 그렇습니다. 오천명이나 되는 군중 앞에서, 저녁 때가 되자 열두 제자들이 먹을 것이라고 내어 놓은 것이 고작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 밖에  없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일흔 두명이나 되는 제자들이 여행을 떠난다고 단 시간 내에 ’돈주머니, 식량자루, 신발, 여벌의 옷가지, 지팡이’를 다 챙기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귀절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성공의 요건입니다. 일의 성공은 세속적인 준비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제자들이 파견되어 가서 해야 할 일은 ’병자를 고치고 하늘 나라의 도래를 전하는 것’(12,9)입니다. 제자들이 준비해야 할 것은 정작 이것입니다. ’어떻게 병자를 고칠 것인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할 것인가’ 여기에 오히려 더 많은 준비와 신경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하면 돈, 식량, 옷등은 정말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선교자의 열정과 믿음, 무엇보다도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과 지혜입니다. 또 선교 대상과의 깊은 공감대 형성입니다.

 

주님께서는 어쩌면, 제자들이 이것을 몸소 체험하도록 배려하시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단순성에 비추어 볼 때, 주님께서 선교의 사명을 주셨을 때 일흔 두 명이나 되는 제자들은 돈이나 식량, 옷가지 등을 마련한다고 법석을 떨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조용히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여러분, 수선 떨지 마시오. 필요한 것이 있거든 현지에 가서 구하시오. 사실 그런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겸손해져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많은 이들의 병을 고쳐주고, 마귀를 쫒게 되면 여러분들은 스스로 놀라고 흥분될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여러분은 자칫 ’나는 이들보다 낫고, 이들과 다르다’라고 착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능력은 누가 주었습니까? 바로 제가 준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어떻게 먹고, 입고 자며 그곳에서 하루 하루를 살 수 있습니까? 바로 그들이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들과 똑 같습니다. 아니 똑 같아져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나는 뽑힌 사도다’라고 자만하지 말고 그들과 같이 먹고, 마시고, 자고 그들과 같이 울고, 웃고, 고통스러워야 합니다. 그러니 빈 손으로 떠나시오, 가서  그들 속으로 들어 가시오.  가서 그들로부터 도움도 받고, 거꾸로 그들의 영혼을 위해 여러분이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시오. 가서 한 형제가 되시오.’라고 말입니다.

 

성서에는 파견되어 갔던 일흔 두 제자의 후일담을 적고 있습니다. 일흔 두 제자가 기쁜에 넘쳐 돌아와 마귀들까지도 복종시켰다고 보고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는 "악령들이 복종한다고 기뻐하기 보다는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10,20)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저도 그런  기쁨을 누리고 싶습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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