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우리의 바탈(성품)은 바로 하늘 그대로요, 한 삶 그대로 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될 수 있고 되어야 하는 가능성이지 다 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말씀이요 명(命)이다.
바탈이란 말은 받은 씨알이라 해석할 것인지도 모른다. 받은 상태 그대로는 하나님의 형상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중(中)이요, 미발(未發)이다. <중용>에서는 중(中)은 천하지정리(天下之定理)라 했지만 이(理)가 이(理) 대로만 있다면 죽는 이(理)이다. 중(中)은 필연적으로 발(發)하지 않을 수 없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은 말씀을 하고야 만다. 그러면 벌써 만물이다.
말씀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이 곧 사람에게 있어서 빛이지만, 빛이라 할 때 벌써 거기 어두움이 있었다. 싸움은 거기서부터 벌어진다. 힘씀이 필요하다.
25.
나는 소우주임을 나도 안다. 세계의 구원과 멸망이 곧 내게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나는 어디까지나 알이요 씨지, 다 자란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싹터, 자라야 하는 것이다. 어떤 개인도 "내가 곧 우주다." 하는 순간 그만 곯아 버리고 싹틀 힘을 잃어 버린다. 우주는 우주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요, 죄도 역사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개인의 싹이 터야만, 알로서의 있음을 잃어 버리고 역사속에서 나와서만, 참 사람이 될 수 있다. 십자가란 곧 이것 아닌가 한다. 알이 땅에 떨어져 싹이 트는 일이다.
그래서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한지도 모른다. 그것은 알 그리스도가 터져 참 그리스도가 되는 소리 아닐까?
26.
사람이 고쳐된다는 것은 정신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반드시 성인이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새 정신은 새 시대에 있다. 군인이 개인으로는 약하고 악하고 망나니여도, 위대한 군대에 속하면 그 전체가 나를 삼켜 나를 무조건 선한 것으로 만들고 그 군대가 나를 이기는 날, 나는 무조건 이긴 자가 되는 모양으로 사람을 고쳐 만드는 것은 시대다. 새 시대의 정신에 몸을 던지란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부족했던 사람도 새 시대의 새 역사의 일꾼이 된다. 그것이 정말 혁명이다. 그것이 정말 종교다. 참 종교는 참 전쟁이요, 참 싸움은 참 종교다.
개인으로는 여전히 잘못이 많아도 참 싸움, 참 종교에 참여하면 참 사람이다. 내가 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참이 나를 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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