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183) 푸세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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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정자 | 작성일2004-10-01 | 조회수806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푸세식! 오늘 아침 이 글을 읽고서 터지는 웃음속에서 추억에 잠기는 시간 가졌습니다. 그리 아름답지도 향내나지도 않는 추억이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추억이긴 합니다. 지금도 이 서울바닥에 푸세식에서 사는 사람들 아직도 많습니다. 가끔 길을 가다보면 수거차가 작업하고 있는걸 보면 알 수가 있지요.
우리도 81년도에 이 동네에 집을 사서 오기전까지는 푸세식 셋집에서 살았습니다. 주인집은 집안에 수세식이 있고 여러 가구 세든 사람들을 위한 화장실은 바깥 안마당 한 귀퉁이에 있는 푸세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참으로 환경의 지배를 받는 존재입니다. 푸세식에서 살 때는 그런대로 살았는데 수세식에 익숙해지다 보니 어쩌다 시골가면 정말 고역이었죠. 그래서 두가지가 절충된 이웃집 화장실로 가곤 했는데 지금은 우리 시댁에도 집안에 수세식을 해 놓아 고역을 면했습니다. 그래도 시골은 바깥에 푸세식 변소를 더 보유하고 있지요. 왜냐하면 거름이 꼭 필요한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고향 떠난게 열한살때였는데 아마 그 나이 안쪽이었을 겁니다. 동네에 나보다 두 살 위인 아이가 있었는데 그 오빠가 항시 똥베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름이 영분이었는데 왠지 똥분이라고 부르는데 그것도 어쩌다고 대개 똥벵이 아니면 똥베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집 마당끝에 포도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습니다. 시골 촌구석에서 포도라곤 그림을 통해서만 볼 수 있을때, 알알이 매달린 포도알은 어린 내게 너무도 신기하기만 했죠.
어느날 난 그 포도나무 밑에 서서 주위를 살폈죠. 아직 익지도 않은 새파란 포도알을 따먹고 싶은 유혹을 못이겨 도둑 고양이처럼 주위를 살피다가 포도송이를 막 웅켜 쥐려는 순간 이 기집애야 하는 고함소리에 너무 놀라 쳐다보니 그 똥벵이가 거적떼기 변소문을 쳐들고서 그 푸세식 변소에 웅크리고 앉은채 소리소리 지르며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 애가 그냥 앉아 소리만 지르고 있는걸 보면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게 분명한데 어린 난 그만 너무 놀라 후다닥 도망쳤는데 잠시 후에 그 애가 쫓아오며 소리 소리 지르는 겁니다. 그 기세가 어찌나 무서웠던지.....
두리번대며 주위를 살피던 도둑고양이같은 내 꼴을 시종 지켜보았을 그 아이가 얄밉고 게면적은 마음에 나도 도망치며 속으로 같이 소리를 질렀는데 그 말은 이솝의 우화에 나오는 여우처럼 에이! 시고 떫을 그까짓 포도 하나 가지고 되게 유세하네! 이 똥벵아! 였습니다.
옛날 어른들이 늘 하던 말이 떠오릅니다. 자기 똥을 3년만 못 먹으면 죽는다던 말....... 내가 어릴때는 비료보다 인분과 퇴비를 훨씬 더 많이 썼습니다. 동네마다 퇴비 썩히는 냄새가 났고 두엄더미가 집집마다 마당가에 있었습니다. 변소옆에 붙은 잿간에는 아궁이에서 나온 재를 쌓아놓고 긴 막대에 두레박처럼 통을 매달아 변소에서 국물을 퍼올려 재와 함께 반죽을 하곤 했지요. 그 일은 늘 머슴일 하는 아저씨가 했습니다.
그리고 가지밭이나 원두밭에 있는 호박이나 참외 수박 오이에는 포기마다 옆에 구덩이를 파고 인분을 주었는데 그래서인지 요즘의 맛과는 다르게 달고도 깊은 맛이 있었습니다. 요즘 딸기넝쿨에는 설탕물을 탄 물을 주어 키운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인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단 맛의 느낌이 옛날과 지금이 다른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는데 가장 기본적인 3대 요소가 무어라 생각하세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거 이 세 가지만 해결되면 대충 인생 꾸려갈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하나라도 잘 안되면 고통 시작입니다. 특히 변비에 걸려본 사람은 아마 절감할 겁니다. 아침부터 너무 냄새나는 이야기를 늘어 놓은거 같아 죄송한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데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대한 사안이란걸 느끼신다면 이해하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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