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작은 자 (대림 제 2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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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현철 | 작성일2004-12-08 | 조회수1,059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작은 자 (대림 제 2주간 목요일)
십자가를 안테나로!
<작은 자>
작은 자는 남들이 자기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할 뿐 아니라 그 사실에 대해서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작은 자는 자신의 재능이나 덕행이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며 서슴지않고 말째의 자리에 자신을 놓을 뿐 아니라 그러면서 기뻐합니다.
작은 자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는 정직하기 때문에 자신의 재능, 시간, 물질, 덕행 등 모든 것이 홀로 선하신 하느님께로부터 거저 받은 것임을 알고 있으므로 아무 것에 대해서도 오직 하느님의 영광과 남의 이익을 위하여 사용합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시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꺼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작은 자는 남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신을 죽이고 자기가 남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결코 흥분하거나 분개하지 않습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자기가 옳고 남이 그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작은 자는 사람들이 칭찬해 줄 때에나 비난을 할 때에나 항상 평화중에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느님께서 보시는 그대로이지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작은 자는 진심으로 통회합니다...
오늘 복음(마태 11, 11-15)에서 예수님께서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일찍이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이 없었다..."라고 하십니다만 세례자 요한은 스스로 작은 자라고 하며, 장차 내 뒤에 오실 주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는 자라고 자신의 겸손함을 보입니다. 이번에 성직자로 수품을 받은 저 젊은이들이 이러한 작은 자로서 충실한 사목생활을 하여 주님으로부터 세례자 요한처럼 큰 인물로 칭찬받기를 기도드리립니다. 그리고 먼저 하늘나라에 가서 '보기드문 큰 키'라고 지금 칭찬을 받고 있을 민성기 신부님의 많은 저서중 '하늘로부터 키재기'라는 책에서 일부 발췌하여 퍼드립니다.
<신학생 시절, 가르멜수도회의 동갑내기 신부 장석훈 베르나르도는 창경궁을 거닐면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
<하늘로부터 키재기>
세우려 한다
오르려 한다
재려 한다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한없이 재려 한다
누가 더 높이 쌓았는지
사람은 땅에 사는 동물
허나 보이지 않는 게 있다
오늘에야 사람들은 불현듯
난쟁이의 키가 커져 보인다
내리고프다 오, 캐노시스! *
※ 캐노시스 : 어원은 희랍말의 kenosis로서 그리스도의 육화의 신비를 나타내는 의미로 많이 쓰여지고 '비움'이라는 뜻을 지닌다.
하늘로부터 키를 재는 지혜, 이러한 지혜는 하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
세상의 이치에서 볼 때 작아진다는 것, 내가 작아진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바보같아 보이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작아지는 그 곳, 바로 그 곳에는 낯설음이 있습니다. 왠지 어색하게 낯설은 그 곳에서 우리는 여느 세상과는 다른 새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작아지기를 어색해 하고 낯설어 하는 것은 세상이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그 새로움에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새로움과 낯설음, 바로 여기에 예수께서 육화하시어 우리와 같은 피조물로까지 작아지시고 십자가상에서 수모를 당하시면서까지 보여주고자 하셨던 세상, '새 하늘과 새 땅' (묵시 21, 1)이 자리하는 것입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크게 되는 변화는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역사의 신비입니다(마르 4, 31).
정현종 선생의 「섬」이라는 단순한 시가 있습니다. 그 전문은 이렇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저는 이 시를 대하면서 시인이 노래하는 이 '섬'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말씀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습니다. 이 섬은 사람들 사이에 있습니다.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사이에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우리는 곧잘 이런 말을 합니다 : "사람이라고 다 사람인가?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누구일까?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참으로 어렵습니다. 참으로 나 자신이 변화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여기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요청됩니다. 나의 삶의 자세를 세상의 상식적인 기준이 아닌 하느님의 기준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나 자신이 작아지고 또 작아져야 하는데 그것이 쉬울 리 없습니다. 자존심을 뭉그러뜨려야 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일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 (루가 14, 11 : 18, 14)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처럼 낮아지게 됩니다" (마태 18, 4).
작음, 작아진다는 것, 작아지는 것이야말로 하느님 앞에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자세이며 신앙인에게 없어서는 안될 덕입니다. 작아지고 작아질수록 그만큼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나의 시간, 나의 공간, 우리의 시간, 우리의 공간을 비우면 비울수록,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기면 여길수록, 세상의 눈으로 보아 바보가 되고 어리석어 보이면 보일수록, 하느님의 신비로운 역사, 하늘나라가 이 땅에 내려오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우리 안에 가득할 것입니다.
"우리 작아집시다! 우리가 작아질 때 예수께서 우리 안에 육화하실 것입니다."
*추신: 민신부님의 감동적인 묵상글을 더 보시려면 민신부님 추모홈피(http://min0319.com)에 들어가셔서, '신부님 서재'코너에 꽂힌 그분의 책들을 만나실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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