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뒤에 ♣
[루가 1,39-45]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걸음을 서둘러 유다 산골에 있는 한 동네를
찾아가서 즈가리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을 드렸다.엘리사벳
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에 그의 뱃속에 든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큰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처녀로서의 삶,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한 여성의
삶을 내려놓고 주님의 종으로 살겠다고 고백한 이후 며칠간. 그
며칠간이 참 궁금했다.
처녀가 아이를 가졌다니, 누가 알게 될 경우에 당할 일들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을까? 자신과 정혼한 요셉의 반응이 궁금하지는 않
았을까? 복음은 침묵한다.
다만 며칠 뒤의 그녀의 행적만을 말해 줄 뿐이다. 마리아는 자기
의 삶의 자리를 떠나 엘리사벳을 향해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도움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은 도울 줄 안다. 사랑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은 사랑할 줄 안다. 지금 자신이 하느님의 종으로 살기 위해
어디에 있어야 할지 아는 여인 마리아의 지혜를 만난다.
두 여인이 만나는 장면은 참으로 아름답고 가슴 따스해진다.개인
적으로 사회적으로 감당해야 할 몫이 엄청날 것임을 뻔히 알면서
도 하느님의 뜻과 하나 됨을 선택한 여인들은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이 복된 여인들을 보는 내 안에 슬픔이 올라
온다. 결혼하지 않은 채 나이 마흔을 훌쩍 뛰어넘어 오십을 바라
보는 길에 들어서 있는 내가 보여서일까?
아직도 몸으로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나를 마리아의 태중에 계신
주님이 바라보신다.
“네가 내 눈동자 안에 있듯, 나 네 안에 있는데….”
아, 주님이 내 안에 계셨습니다.
내가 알지 못함은 처녀로 있고 싶은 때문이었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담보로 처녀로 있고 싶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종으로 나 있을 때,
이미 내 안에 잉태되어 계심을 믿습니다. 아멘.
『야곱의 우물』 《매일성서묵상》에 나오는 12월 21일자
《새터 교회》 박후임 목사님의 글입니다. *^^*
도움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은 도울 줄 안다.
사랑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은 사랑할 줄 안다.
오늘 이곳은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묵상 나누기를 잠시 쉬는...
안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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