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30]연중 제4주일: 참된 행복(수원교구 조욱현신부님 강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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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태진 | 작성일2005-01-30 | 조회수998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성 바오로 수도회 홈피 선교네트 http://www.paolo.net/catholic/
--성서의 세계--말씀 묵상 방에서 퍼옴 (수원교구 조욱현신부님 강론)
연중 제 4 주일: 가해
예수께서는 비로소 입을 열어 이렇게 가르치셨다.
4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7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9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0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
- 묵 상 -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이다
1-2 독서가 함께 이 행복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복음은 진정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 날 야훼께서는 야훼를 믿었던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들만이 화를 면하고 모두가
화를 입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가난한 사람들이 바로 야훼께서 다시 `양육하실' 새 백성의 `씨'가 될 것이다.
"너희는 야훼를 찾아라"(2,3)는 말은 회개의 권고이다.
진정한 회개만이 야훼의 날에 화를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훼께서는 `거만을 떨며' `흥청거리는'자들을 정의로 다스리시고,
그분은 오로지 가난하고 순박한 정신으로 그분께 나오는 모든 이에게 마지막 날에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이다.
`영적' 차원의 의미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가난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바쳐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의 `판단'에
신뢰심을 갖고 자신을 내맡기는 하느님 안에서의 완전한 `자기포기'를 말한다.
이러한 가난은 회피해야할 저주스러운 것이 아니라, 도달해야할 높은 `목표'이다.
바로 이 `가난'이라는 것은 항상 `정의' 즉 하느님의 뜻을 실행할 의무와 결합되어야
한다.
이렇게 겸손하고 가난한 사람은`살아남게 되고',`야훼의 이름만 믿을 것이고'(3,12)
또한 불의한 짓을 범하지 않고 `거짓과 사기'를 입밖에 내지 않을 것이다(3,13).
여기서 `가난하다'는 개념과 '겸손하다'는 개념은 일치한다.
이 개념을 통해 예언자들은 메시아를 예고한다(즈가9,9 참조).
이다. 산상수훈 하나 하나를 그분의 삶을 통해 입증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산상수훈은 모든 윤리규범을 초월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인간의 정상적 지혜가 부서지고 만다.
그 지혜는 하느님 앞에서 `어리석은 것', 즉 `우리 자신이 회개할 때' 만이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이 산상수훈의 메시지는 `회개'에 대한 권고(마태 4,17 참조)를 받아들였거나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를 갖춘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군중들을 가르치신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바위에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1고린3,3 참조)에 새겨진
그리스도인의 새 `법'으로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켜 새롭게 하는 것이다.
이 산상수훈은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가난해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고,
박해를 받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이 아니라, 옳은 일을 위해 박해를 받기 때문에 행
복한 것이다(10절).
이 모든 것은 우리 모두가 `회개하여' 이루어야 할 최상의 목표라고 하겠다.
`예루살렘 성서'는 이 구절을 `가난한 정신을 갖고있는 사람들은...'으로 훌륭히
번역하고 있다.
이렇게 마태오 복음은 제1독서의 `가난'의 영적인 차원에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가난'의 '정신'이라는 것은 비록 우연히 소유하였을지라도 재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난한 정신'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의 지적인 능력, 사고, 계획, 우리의 성성까지도
포함하여 우리가 선익을 위해 소유할 수 있는 그 모든 것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조차
집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께 의탁함으로써 그분을 통해 자신을 무한히 부요하게 하고,
또 그분이 베풀어주시는 모든 선물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사람이다.
우리가 물질적으로 가난하건 부요하건 상관없이 다른 모든 행복을 함축적으로 내포
하고 있는 첫 번째 행복의 정신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살고있는가 하는 것은
집착으로부터 내가 얼마나 해방되어 있느냐, 그리고 그럼으로써 하느님을 통해
부요해지고 그분께 받은 선물을 나눌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근본적인 `회개'가 있어야 한다.
"회개가 있는 곳에서는 현세 생활의 물질적 선에 대한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이러한 변화가 그리스도교 사상의 특성이다" (1978. 1.11. 수요담화문)
라고 바오로 6세 교황은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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