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 제4주간 목요일 복음 묵상 (2005-03-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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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5-03-10 | 조회수1,000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나는 사람에게서 찬양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지만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 딴 사람이 자기 이름을 내세우고 온다면 너희는 그를 맞아들일 것이다."(요한 5, 41-43) 오늘 복음은 어제 언급된 "아들의 권한"(5, 17-30)을 아버지 하느님의 증언
으로 명시해 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아들 예수를 위한 아버지의 증언
(31-40절)과 그 증언의 불신에 대한 윤리적인 책임(41-47절)에 관한 내용
으로 나뉘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첫째 부분에서는 "증언"이란 표제어로
(31절), 둘째 부분에서는 "영광"이란 표제어(41절)로 시작한 것도 그 특징
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성서 내지는 하느님의 말씀과 세례자 요
한에 대한 유대인들("당신들"로 언급됨)의 그릇된 태도가 지적됨으로써 예
수와 하느님, 곧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그들과 대조를 이룹니다. 즉, 예
수는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자(36절), 하느님의 이름으로 일하는 자라는
사실(43절)이 재확인되고 강조된 셈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예수의 이러한
인격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증언들로서 구약성서, 모세, 세례자 요한, 아
버지의 "증언", 예수의 "일들"이 언급된 것입니다. 사실 자기 자신을 위한 증언은 신뢰할 수도 없고 유효하지도 않습니다. 이
것은 일반 법정에서 통용되는 말인데,(참조: 신명 13,18-62; 마르 14,55-
59) 유대인들이 예수에게 이와 똑같은 말을 했을 때 예수는 달리 해석합니
다(8,13-14). 즉, 자신은 참된 증인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위한 그 증언
도 신뢰할 수 있고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 내지는 자신의 정당한 권한을 확증하고자 이런 법정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을 등불로 비유하는 것은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자들 앞에서
행한 증언(1,19-27)을 연상케 하는데, 복음사가가 처음부터 세례자 요한의
증언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한 것은 사실입니다(1,15-19 32-34). 하느님께
서 세례자 요한의 증언에 함께하시고 세례자 요한이 또한 하느님의 충실
한 사람(파견된 자)으로서 그리스도에 관해서 증언한 것이라면(1,31-34),
그의 증언도 "진리"를 위한 증언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예수
는 자기 자신이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서" 세상에 왔다고 빌라도 앞에서
밝힌 바 있는데(18,37), "진리"는 예수를 통해서 밝혀지는 하느님의 종말론
적인 계시입니다. 예수 자신이 또한 "진리"이기 때문에(14,6) 세례자 요한
은 그런 진리 계시에 봉사함으로써 "진리에 대하여 증언한" 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에 이어진 부분입니다. 어제 올린 글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안식일 율법 위에 군림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
근거로 예수님은 자신이 하느님과의 관계성에서는 아들임을 본성으로는
같은 하느님임을 주장합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은 바로 그 주장을 뒷받침
하는 가르침인데, 예수님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시기 위해 유다인들이
법정에서 자신의 진술이 진실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둘 혹은 세 명의 증인
을 세워야 하는 법을 인용합니다. 즉, 예수께서는 증인 셋을 드는데, 세례
자 요한, 하늘의 아버지, 그리고 구약성서가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아버지의 증언이 가장 결정적입니다. 아들의 말씀 속에 아버지가 말
씀하는 것이 들리며, 아들의 행동 안에 아버지가 행동하시는 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예수님은 한 몸에 받으시는데, 결국 고발된 예수님은 홀로 자
신을 변호하십니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말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두고 볼
일입니다. 원본이신 예수님 알아보기
예수님이 원본이라면 그들은 복사본입니다.
누구라도 원본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대자들은 복사본을 보면서도 원본을 몰라봅니다.
빛 자체이신 분은 몰라보고 빛이 반사된 거울만 섬기는 형국입니다.
해박한 성서지식과 깊은 신심을 지녔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정작 성서가 말하는 예수님을 배척한 것은 비단 그들만의 얘기가 아닙니
다. 내 인생에 기쁨과 보람, 행복을 더해주는 많은 것, 일, 사람들에 관심
과 시간을 투자하면서도 정작 그 모든 것의 원천이신 예수님을 몰라본다
면 말입니다.
성서나 교리, 순교자들과 영성가들의 교훈을 통해 예수님에 관해 많은
지식을 쌓으면서도 진심으로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도 복사본에 열광하는 어리석은 사람일 뿐입니다.
예수님! 가끔은 원본이신 당신보다 복사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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