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적 생활 ♣
제9장
◎ 번민.◎
1. 하느님의 위안이 있으면 모든 인간의 위안을
천히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위대한 것은 사람의 위로나
하느님의 위로도 없이 살아가는 것이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런 고독을 참아 견디며
무슨 일에든지 자기 자신을 찾지 아니하고
잘한 일이 있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은총을 받아 즐거워지고 열심해지는 것은
그리 위대한 것이 못 된다.
이런 시간은 누구나 탐하는 바이니라.
하느님의 은총에 끌려가면 누구나 즐겨 나아간다.
전능하신 손이 붙들어 주고 최선의 안내자가 지도해주면
아무 것도 어려운 줄 모르니 이상할 것이 없다.
2. 우리는 무엇이나 위로받기를 즐기고,
자기 편익을 도모하지 않기는 어렵다.
순교자 라우렌시오 성인은
그가 섬기던 제관과 같이 세상을 초월했으니
그가 이 세상에 좋다는 것을 다 경천히 볼 줄 안 연고이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가 가장 사랑하던 하느님의 제관인
식스도와 작별하는 것까지도 참아 견디었다.
그렇게 그는 조물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인간 사랑을 초월했고,
사람의 위안을 받은 것보다 하느님의 뜻을 따랐다.
그러니 너도 하느님 사랑에 친밀하고
사랑하는 벗이라도 떠나야 할 때는 작별할 줄을 알라.
우리는 결국 서로 작별할 때가 오고야 마는 것이니
친구를 떠나게 된다고 그리 마음 상하지 말 것이다.
3. 자신을 오롯이 이기는 법을 배우고
하느님께만 모든 정을 돌리게 되자면
자신과의 큰 충격마저 이겨야 한다.
사람이 자기를 믿고 살면
오래지 아니해서 인간의 위안을 찾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참으로 사랑하고
덕을 삼가 닦으려는 사람은
인간 위로를 믿지 아니하고,
쾌락을 찾지도 아니하며,
그리스도를 위해서 어려운 일과를 잘 행하고,
가혹한 일이라도 참아야 한다.
4. 그러니 하느님이 영적 위안을 주시거든
감사로이 받아들이고,
다만 이는 네가 잘해서 얻은 것이 아니고
하느님 거저 주시는 예물로 알라.
위안을 받는다고 너 스스로 높이 생각지 말고,
따로 즐거워 하지도 말며,
과분하게 너를 평가하지 말고,
오히려 그런 은혜를 받고도 겸손되이 생각하고,
네 행동거지에 주의를 더 가하며,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라.
이런 시간이 언제 지나갈지 모르고
유혹을 당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위로가 없어진다고 곧 실망하지 말고,
겸손되이 또 항구하게 하느님 다시 찾아주실 때를 기다리라.
하느님은 더 큰 위안을 주실 수도 있으니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아는 사람에게는
이런 것이 새롭지도 않고 이상하게 보이지도 아니한다.
위대한 성인들과 옛날 예언자 들도
다 이런 마음의 변화를 경험했다.
5. 어떤 사람이 은총이 그에게 있을 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풍족히 살고 있으니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시편 30, 6).
그러다가 은총을 잃고는 자기가 당한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주여 내게서 당신 얼굴을 돌리시니
나는 번민이 심해졌나이다."(시편 30, 7).
그래도 그는 실망하지 않고 더 열렬히 주께 이런 기도를 했다.
"오! 주여, 나는 당신께 부르짖으며
내 하느님께 구원의 기도를 올리나이다."(시편 30,10).
결국은 그가 그 기도의 효과를 얻고,
하느님이 그 간구함을 들어주심을 증거하며 이렇게 말했다.
"주께서 나를 들어주시고 나를 불쌍히 보아주시어
나를 도와주시었다." (시편 30,10).
어떻게 주께서 보아주셨는가.
"당신은 내 근심걱정을 즐거움으로 변하게 하시고
행운 중에 살게 하셨나이다."{시편 30, 11).
위대한 성현들도 이렇게 살았으니
약하고 궁한 우리가 때로는 열렬히,
때로는 냉냉하게 산다고 실망할 것이 아니다.
성령은 당신 좋으실 대로 오시기도 하고 떠나가시기도 한다.
그래서 욥 성인을 이런 말씀을 했다.
"당신은 아침 일찍이 찾아 주시더니,
얼마 안가서 그를 시험하시나이다."(욥 7, 18).
6. 그러니 나는 무엇에 희망을 두고 무엇을 믿고 살 것인가.
하느님의 크고 크신 자비만을 믿고
천상 은총을 바라고 사는 것 이외에 다른길이 없다.
내가 바로 착한 사람들을 알고, 열심한 형제들과 살며,
충실한 벗들과 사귀고, 거룩한 책을 읽고,
고상한 처세를 배우고, 즐거운 노래와 시를 부른다 해도
은총을 잃어 궁지에 놓여있으면 그것이 별스런 위안이 되지 못한다.
그런 때에는 참아 견디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극기(克己)하는 도리밖에 없다.
7. 나는 아무리 열심하고 신심있게 살아도
때로는 은총이 물러가고
열정이 감소되지 아니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어느 성인이나 아무리 고상한 관상에 탈흔되고
총명해졌다도 해도 멀지 아니하여 유혹을 당했다.
그것은 하느님을 고상하게 관상할 자격이 되자면
하느님을 위해서 어떠한 곤란이라도 겪어 단련되어야 함이다.
유혹을 당하는 것은 위안이 따라올 징조이다.
이는 유혹을 당해 시련을 겪은 사람에게
천상 위안이 약속되어 있음이다.
주 말씀이 "이겨 나간 그에게
나는 생명의 나무 열매를 먹게 해줄 것이다."(묵시 2, 7) 하셨다.
8. 천상 위로를 주시는 것은
사람이 역경을 잘 참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유혹이 따라오는 것은 사람이 잘했다는
오만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악마는 자고 있지 아니하고, 육체는 아직 죽지 아니했다.
그러니 너는 거침없이 싸울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원수는 네 바른편과 왼편에서 쉬지 않고 쳐들어 오기 때문이다.
◈ 묵 상 ◈
덕을 닦아 나가고 내적 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
가끔 영혼의 건조함을 느끼고 권태증이 생긴다.
이는 자연 심리적으로 그렇게 되는 수도 있고
예상치 아니한 역경을 당해서 그럴 수도 있다.
부모를 잃거나 배우자 또는 친구와 작별하게 되거나
안도감을 위협하는 일을 당하면,
자연히 우리는 번민을 느끼게 되고
정신의 허무함을 당하고
실망의 어두운 굴속을 걸어가는 심정같이
앞이 캄캄해지고, 모든 것에 싫증이 나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아니하는 때가 온다.
음악가가 바이올린을 부수는 심정,
농사꾼이 농기구를 내던지는 심정처럼
덕에 나아가는 일에도 권태를 느끼게 되고,
아무리 정신을 수습하려 해도 분심만 들어
이유없는 번민과 공포심이 일어나는 수가 있다.
이런 심리 상태 교체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니,
이를 잘 알아듣고 꾸준히 하는 일에
기계적으로라도 분망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이런 상태는 우리의 잘못을 하느님께서 벌하시어 그런 것이 아니고
누구나 당하는 일이니 참아 나가야 한다.
바바람이 지나가면 청명한 날씨가 돌아오듯이
안심하고 즐거운 때가 돌아올 것이다.
◐ 인보성체 수도회의 설립자이신 윤을수(라우렌시오) 신부님께서
두번째로 개정 번역하신 준주성범,[그리스도를 따라]에서 옮겨 적었음.◑
♬ 위로 받기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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