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5.07.0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06:56 조회수58 추천수3 반대(0) 신고

 

2025년 7월 8일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우리 성당 아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종종 아이들이 편지를 건네줍니다.

맞춤법도 엉망이고

글씨도 삐뚤삐뚤입니다.

내용도 별것 없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를 보면

저절로 아빠 미소가 생깁니다.

또 제게 다가와서 크고 작은 일을

일러바치듯 이야기하는 아이도

많습니다. 그만큼 저를 ‘믿어주고

사랑해 주는구나!’ 싶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아이들이 더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어른들이 종종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이 미사 때 너무 떠들지 않냐고,

너무 버릇없지 않냐고 묻습니다.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아이답게 열심히 미사에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되고, 아이들 수준에 맞게

예의 바르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실수해야 아이다운 것 같고,

그 실수를 보면 괜히

미소가 나오게 됩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것,

그것도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음이 커다란 기쁨이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나를 낮춰야만

사랑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부모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고 옛날

약장수들이 말하곤 했던 “애들은 가라.”

라면서 거리를 뒀다면 절대로

사랑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결국 사랑은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사랑을 전해야 나 역시

사랑받을 확률이 올라갑니다. 특히

이 사랑은 전염성이 강하기에 자기가

받은 사랑을 남에게 전달했을 때

그 파급효과는 적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치유 활동을 복음에서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마귀 들려 말 못 하는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복음에서

말 못 한다는 것은 의학적인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업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악의 세력을 쫓아내는

크신 권능을 지니신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행동을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기

때문입니다(마태 9,36 참조)

이 표현을 희랍어 원문에서
‘σπλαγχνίζομαι(스플랑크니조마이)’

쓰는데, 이는 내장이 끊어질 듯한

극진한 자비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사랑으로 악의 세력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신 것입니다.

악의 세력을 쫓아내는 경우를

본 적 없는 군중은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마태 9,34)

라고 말하면서 비난합니다. 누구는

깜짝 놀라지만, 똑같은 결과를 보고서

비난합니다. 군중은 구원 활동을

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본 것이고,

바리사이는 질투로 왜곡하는 것입니다.

군중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였고,

바리사이는 그 사랑을 거부했습니다.

우리는 일상 안에서 계속 주어지는

주님의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혹시 불평불만으로

그 사랑을 왜곡하고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사랑 없는 삶은 결국

행복하지 못한 삶을 만들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무엇으로 채워가는 것이다.

(존 러스킨)

사진설명: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