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복음묵상(2005-04-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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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5-04-22 | 조회수1,007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 6)
예수께서는 자신의 공생활을 마감할 즈음에 이제 곧 세상을 떠나야 함을
내다보시고 사랑하시는 제자들만 따로 데리고 마지막 만찬을 나누신 후
손수 그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특별한 사랑을 행하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어디까지 겸손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셨고, 서열에 관
계없이 '모두가 서로를 마땅히 섬겨야 함'을 엄중하게 가르치셨는데, 이
가르침을 토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도 선포되었습니다. 이 계명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사랑한 것처럼 제자들도 서로 사랑함으로써 그 사랑
안에서 세상이 예수를 알아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을 이어
갈 제자들의 사명은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별식이 순풍에 돛단 듯 매끄럽게 이루어지지만은 않는
데, 스승을 팔아 넘기게 될 가리옷 사람 유다는 사탄의 굴레를 쓰고 이미
그 자리를 떠났고, 제자단의 으뜸인 베드로조차 목숨을 바쳐서라도 스승
을 끝까지 따르겠다고 장담하지만 하루 밤을 넘기기도 전에 스승을 세 번
씩이나 배반할 것이라는 예언을 마음에 새겨야 했습니다. 사태가 이쯤 되
었다면 고별식장의 분위기는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피부
에 와 닿는데, 바로 여기까지가 요한복음 13장의 흐름입니다.
고별식장의 삼엄한 분위기는 모두를 걱정과 불안으로 몰아갑니다. 당장
이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도대체 스승은 어디로 간다는 것인지 제자들
은 그저 막막하기만 합니다. 드디어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는데, "너희는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마라."입니다. 걱정이나 불안에 듣는 약은 딱 하나
뿐인데,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1절)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동시에 희망이며 신뢰심입니
다. 그러나 단순히 믿는 것만으로 제자들의 걱정과 불안이 제거될 것 같지
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통상 무지에서 불안과 걱정이 싹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믿을 수 있는 설명을 덧붙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
님의 '가심'은 잠시의 이별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아버지의 집, 즉 하느님
나라에 모두를 위한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가시는 이별이며, 있을 곳이 마
련되면 다시 와서 모두를 데려가실 때까지의 이별입니다.(2-3절)
예수께서는 이제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4절)고
제자들의 '앎'(지식)을 전제하시지만 3년 동안 예수님을 동반했던 제자들
중 토마스가 나서서 "우리는 당신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그 길
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5절) 라고 반문합니다. 토마스는 아직도 불
안과 걱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고 예수께서 '가시는 곳'과 '그 길'에 대한
자신의 앎이 여전히 불충분하다는 표시를 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당
신이 가시는 곳은 아버지가 계신 곳이요, 그 길은 바로 당신 자신임을 밝
혀주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6절) 예수께서 가실 곳은 아버지의 집이고 아버지의 집이란 아버
지 자신을 말합니다. 이곳은 아버지와 같은 본성을 지닌 아들의 고향이고
아버지로부터 파견된 아들 외에는 아무도 갈 수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예
수께서는 그곳에 친히 가서 제자들의 집을 마련하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로 가는 길은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이 말씀은 비유법이 아니라, 예수님 스스로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에고 에이미'(나는 ~이다) 도식을 사용한 자기계시인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께서는 지식이 부족해서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불식시키셨습니다.
믿음에 앎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오늘만큼은 아닌데, 바로 아버지와 예
수님을 믿는다는 것으로 모든 것은 완성됩니다. 바로 예수님 스스로가 길
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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