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를 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마태 5,43-48)
『야곱의 우물』《매일성서묵상》
◆우리가 서로 어우러져 기쁘게 살아간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그러나 늘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하루를
살며 사랑도 받지만 아픔과 상처도 받습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지요.
이런 아픔과 상처에 대한 반응이 미움과 분노입니다. 우리가 힘들어
하고 힘없어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바로 다른 사람이 준 상처에 대해
미움과 분노로 표현하기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상처를 받는 것은 사람만이 아닙니다. 하느님 아버지
역시 사랑으로 창조한 피조물인 우리 인간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픔과 상처 그리고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와
사람이 다른 점이 있다면 그에 대한 반응입니다. 아버지는 보복과
벌이 아닌 더 큰 사랑으로 배은망덕한 우리를 받아들여 주시고 안아
주십니다. 외아들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이 바로 그 받아들임의
극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상처와 아픔에 대해 인간적인 반응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으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상처와 아픔에 대해 미움과
분노가 아닌 그 상처와 아픔을 아버지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처와 아픔을 준 사람을 하느님 사랑에 봉헌하는 것입니다. 미움과
분노는 상대방뿐 아니라 특별히 자신에게 또 하나의 멍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은 서로에게 생긴 멍자국을 씻어내는 것이며
세례성사의 갱신입니다.
기정만 신부(수원교구 화서동 천주교회)
[영성체후묵상]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랑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받은 것은 미움과 박해와
배반뿐이었는데도 하느님과 인간을
사랑하셨기에 목숨까지 바치셨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야말로 참사랑이며,
참사랑만이 변화의 힘을 가질 것입니다.
이 사랑은 오늘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
하신 말씀에서 잘 나타납니다.
별 작곡/이병기
작사/이수인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달이 별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별이며 내별 또 어느게요
잠자코 홀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