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 남자는 멋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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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옥 | 작성일2005-08-08 | 조회수993 | 추천수14 | 반대(0) 신고 |
며칠 전, 하늘은 흐린데 도시의 아스팔트 위로는 뜨거운 바람이 훅훅 끼치는 그런 날이었다.
병원의 동료와 점심 식사를 하러 근처 돈까스 가게에 들어가 앉았다. 음식점 안은 넓고 시원했으며 가운데 몇 자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자리에 사람들이 빼곡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앞에 앉은 동료와 조근조근 얘기를 나누는데 음식점의 자동 유리문이 스르르 열리며 누군가 들어섰다.
처음에는 그저 또 하나의 손님이려니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리문 안으로 들어선 그 남자는 좀 남달랐다. 진한 감색 양복을 차려 입고 있었고 하얀 와이셔츠에 고운 넥타이까지 꼼꼼하게 맨 그는 한여름에 보기 드문 신사였다.
그러나 그 남자가 정말 남달랐던 건 팔과 다리의 길이가 다른 음식점 안의 사람들에 비해 현저히 짧았다는 것이다. 식사를 하던 사람들 사이에 본능적으로 돌아가는 눈동자를 수습하느라 작은 동요가 일었지만 정말 작은 키의 그 남자는 조용하고 단정한 걸음걸이로 남은 식탁에 앉아 작은 손으로 메뉴판을 가리키며 메밀국수를 주문했다. 그리고, 메밀국수가 식탁에 놓여지자 그 남자는 왼 손을 가슴에 얹더니 오른손으로 크게 성호를 긋는 것이었다. 아주 천천히.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그 작은 팔이 그렇게 크게 성호를 그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숨 죽인 음식점 한쪽에서 작은 동요가 일었고 구석의 어느 식탁에서인지는 조그맣게 그러나 부끄럽게 키득거리며 성호를 따라 긋는 아가씨들도 눈에 띄었다. 그녀들의 행동도 예뻤지만 나는 그 남자의 옆모습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봐도봐도 또 보고 싶었다. 내 가슴에 그렇게 차올랐던 게 뿌듯함이었는지 기쁨이었는지 자랑스러움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예전에 한재상 세례자 요한 신부님께서 강론 중에 그런 말씀을 하셨다. '사랑하면 자랑하고 싶은기라요.'
주님을 사랑한다는 걸 그렇게 자랑할 수 있었던 그 남자의 당당한 성호가 그 날의 더위를 날려버렸다. 버스 안에서, 전철 안에서 조그맣게 긋던 나의 성호가 그날 이후 더 커지고 정확해졌다. 나도 주님을 사랑하고 자랑하고 싶으니까. 한여름의 그 남자는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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