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새벽을 열며 / 빠다킹신부님의 묵상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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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5-08-11 | 조회수704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2005년 8월 11일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제1독서 여호수아 3,7-10ㄱ.11.13-17 그 무렵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오늘부터 온 이스라엘이 너를 큰
인물로 우러르게 하겠다. 내가 모세의 곁에 있어 주었듯이 네 곁에도 있어 준다는 사
실을 그들이 알게 되리라.
너는 계약 궤를 멘 사제들에게 요르단 강 물가에 이르거든 요르단 강에 들어서 있으
라고 명령하여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렀다. “가까이들 와서 너희의 주 하느님께서 하시
는 말씀을 들어라.” 여호수아는 말하였다. “살아 계시는 하느님께서 너희 가운데 계
신다. 가나안족은 반드시 쫓겨나리라.
이제 온 세계의 주 하느님의 궤가 너희 선두에 서서 요르단 강을 건널 것이다. 온 세
계의 주 하느님의 궤를 멘 사제들의 발바닥이 요르단 강 물에 닿으면 곧 요르단 강
물은 끊어져 위에서 흘러내려 오던 물이 둑을 이루어 우뚝 서리라.”
백성들이 천막을 거두고 요르단 강을 건너는데 사제들은 계약 궤를 메고 백성들의
선두에 섰다.
그 궤를 멘 사람들이 요르단 강에 이르렀다. 마침 추수절이 되어 둑에까지 물이 넘쳐
흐르고 있었는데, 궤를 멘 사제들의 발이 물에 닿자마자 위에서 흘러내리던 물이 우
뚝 일어서서 아담에서 사르단 성곽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 둑을 이루는 것이었
다. 아라바 호수라고도 하는 사해로 흘러내리던 물이 다 끊어져 백성들은 예리고 맞
은편으로 건너갔다.
주님의 계약 궤를 멘 사제들이 요르단 강 한복판 마른 땅에 서 있는 동안, 온 이스라
엘이 마른 땅을 밟고 건너 결국 온 겨레가 다 요르단 강을 건넜다.
복음 마태오 18,21-19,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
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하늘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왕이 자기 종들과 셈을 밝히려 하였다. 셈
을 시작하자 일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왔다.
그에게 빚을 갚을 길이 없었으므로 왕은‘네 몸과 네 처자와 너에게 있는 것을 다 팔
아서 빚을 갚아라.'하였다.
이 말을 듣고 종이 엎드려 왕에게 절하며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곧 다 갚아 드리겠
습니다.'하고 애걸하였다. 왕은 그를 가엾게 여겨 빚을 탕감해 주고 놓아 보냈다.
그런데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밖에 안 되는 빚을 진 동료를 만나자 달
려들어 멱살을 잡으며 ‘내 빚을 갚아라.' 하고 호통을 쳤다.
그 동료는 엎드려 ‘꼭 갚을 터이니 조금만 참아 주게.'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동료를 끌고 가서 빚진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
어 두었다.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분개하여 왕에게 가서 이 일을 낱낱이 일러바쳤다.
그러자 왕은 그 종을 불러들여 ‘이 몹쓸 종아, 네가 애걸하기에 나는 그 많은 빚을 탕
감해 주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하며 몹시 노하여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형리에게 넘겼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
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강 건너편 유다 지방으로
가셨다.
방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가를 깊이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 둘은 이제 결
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어느 정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드디어 그 형제님께서는 청혼을 하기 위해 사랑하는 여인의 집을 향해서 가
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청혼을 받아 줄 것으로 굳게 믿었습니다. 왜냐하
면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도저히 의심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그
집에 도착해서 문을 두드리자 하인이 나와서 이렇게 말하더래요.
“아가씨가 이제 더 이상 당신을 만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 형제님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그녀에게 자신을 거절한 이유
를 알려 달라는 장문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으로부터 온 회답은 이런 것
이었지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오는 것을 보고 나는
정말로 기뻤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길에서 일하고 있던 한 여인을 밀치고 그냥 지나
쳐 버리더군요. 당신은 넘어진 그 여인을 부축해 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때 이미
당신에게 내 한평생을 맡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불쌍한 여인에게 친절을
베풀 수 없는 사람이라면, 나에게도 진정한 사랑을 베풀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형제님은 사랑하는 애인에게 빨리 청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에
게 소홀하게 대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소홀했던 하나의 친절과 너그럽지
못한 마음이 인생의 동반자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던 사랑을 잃게 하였
던 것이지요. 맞습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 펼쳐지는 나의 불친절과 너그럽지 못한 마음들이 스스
로를 더욱 더 힘들게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질문, 즉 자신에
게 잘못을 저지른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일곱 번 뿐 아
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라는 명언을 남겨주십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면 모두 490번 용서하고서 491번째에는 용서하지 말라는 것일까요? 아니
지요. 무조건 용서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
서할 때, 마음의 평화와 함께 주님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나 자신을 위
해서 용서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하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는 습관만 갖게 된다면 어렵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산길을 걸을 때,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보다는 자주 다녀서 확실하게 길이 생긴
곳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을 옮기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쉬운 길이기 때문이지
요. 그런데 그 길이 처음부터 이러했을까요? 처음에 이 길 역시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명이 지나고, 또 한 명이 지나고…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다 보니 길이 단단해지고 넓어지면서 편하고 쉬운 길이 된
것이지요.
우리가 그렇게 어렵다는 용서도 이렇지 않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처럼 계속해서 용
서하다보면 그렇게 어려워 보이는 용서도 편하고 쉬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
다. 혹시 지금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래서 스스로 힘들어하십니까? 그
렇다면 다시금 용서하는데 노력을 해보세요. 딱 490번만 용서해보십시오. 아마 491
번째에는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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