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하늘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왕이 자기 종들과 셈을 밝히려 하였다. 셈을 시작하자 일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왔다. 그에게 빚을
갚을 길이 없었으므로 왕은 ‘네 몸과 네 처자와 너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빚을 갚아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종이 엎드려 왕에게 절하며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곧 다 갚아드리겠습니다’ 하고 애걸하였다. 왕은 그를 가엾게 여겨
빚을 탕감해 주고 놓아 보냈다. 그런데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밖에 안 되는 빚을 진 동료를 만나자 달려들어 멱살을
잡으며 ‘내 빚을 갚아라’고 호통을 쳤다. 그 동료는 엎드려
‘꼭 갚을 터이니 조금만 참아주게’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동료를 끌고 가서 빚진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분개하여 왕에게 가서 이 일을 낱낱이
일러바쳤다. 그러자 왕은 그 종을 불러들여 ‘이 몹쓸 종아, 네가 애걸
하기에 나는 그 많은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하며 몹시 노하여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형리에게 넘겼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강 건너편 유다 지방으로 가셨다.
(마태 18,21-19,1)
『야곱의 우물』《매일성서묵상》
◆기가 막혔습니다. 어쩌면 바로 그 순간 수녀님이 전화를 하셨을까요?
35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좋을지
하느님께 간절히 여쭙는 기도를 막 마친 순간 전화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성서묵상’ 원고 청탁을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원고 쓰는 일이 직업이었다지만 매일성서묵상은 기도를 해야만 쓸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하고 한 달 동안 끙끙거리다가 수녀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제발 이 일(일이 아니라 기도입니다만)을 면제시켜 주세요”
라고 간청하고 싶었지만 결국 내 입에서 나온 소리는 “한 달만 연기해
주세요”였습니다.
그리고 미뤘던 숙제를 다시 집어든 순간 ‘맙소사’ 싶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가 제게 주어진
첫번째 과제였으니까요. 차라리 지난 달 매일성서묵상을 쓸 걸 그랬구나
하는 후회도 들었습니다. 아무리 꼼수를 부려도 하느님은 도저히 피해갈
수 없다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하게 됐습니다. 그렇지요. 용서하지 않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요? 저는 마음속에 분노를
감추고 사는 편입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분노를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잊어버리거나 무시하면서 상대방을 용서했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묵상을 시작하면서 저는 제가 용서해야 할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묵상을 할수록 여러 사람이 떠오르는군요.어떻게 그들을
용서해야 할까요? 우선은 그들을 위한 기도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 일만 달란트나 빚진 주제에, 그래서 매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고 있으면서도 제게 백 데나리온밖에 빚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빚
갚기를 재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직도 제가 받을 빚이 더
크게 보이니 말입니다. 하느님, 용서해 주세요.
임영숙(서울대교구 한남동 천주교회)
[영성체후묵상]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유혹에 빠져
죄를 저지를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못을
행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으므로
다른 이의 잘못도 용서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