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새벽을 열며 / 빠다킹신부님의 묵상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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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5-09-22 | 조회수652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05년 9월 22일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제1독서 하깨 1,1-8
다리우스 왕 제이년 유월 초하루였다. 주님께서 예언자 하깨를 시켜 스알디엘의 아
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 대사제에게 말씀을 내리셨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 백성은 아직 주의 성전을 지을 때가 아니라고 말
한다.” 주님께서 예언자 하깨를 시켜 하신 말씀은 이러하다. “너희는 어찌하여 성전
이 무너졌는데도 아랑곳없이 벽을 널빤지로 꾸민 집에서 사느냐? 만군의 주님이 말
한다. 너희가 어떻게 지내 왔는지 돌아보아라. 씨는 많이 뿌렸어도 수확은 적었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마셔도 성이 차지 않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으며, 아무리
벌어들여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만군의 주님이 말한다. 너희가 어떻게 지내 왔는지 돌아보아라. 산에 가서 나무를 찍
어다가 나의 성전을 지어라. 나는 그 집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내 영광을 드
러내리라. 주님의 말이다.”
복음 루가 9,7-9 그때에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는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어리둥절해졌다. 죽은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고 또 옛 예언자 중의 하나가 되살아났다고
하는 말도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로데는 “요한은 내가 목 베어 죽이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소문에 들리는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하면서 예수를 한번 만나 보려고 하였다.
분들로부터 축하 인사도 받고, 선물도 많이 받았답니다. 하지만 이번 영명 축일이 예
년과 달리 특별하게 기쁜 이유가 있답니다. 선물을 많이 받아서? 문자 메시지를 하
루 종일 쉬지 않고 받아서? 새벽을 열며 카페를 통해 많은 축하 인사를 받아서?
물론 저를 기쁘게 했던 일들이지요. 하지만 저를 더욱 더 기쁘게 했던 것은 이번 영
명 축일에는 특별히 많은 신부님들의 축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글쎄요. 제가 본당
을 맡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더군다나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어서, 아무런 축하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신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연
세 많으신 신부님들로부터 후배 신부님들까지 저에게 많은 축하를 해주셨다는 것은
저에게 그 무엇보다도 큰 기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동료 사제들의 기억 속에 제가
있다는 이야기이니까요.
이렇게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기에 더 커다란 힘을 얻습니다. 하지만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 그리고 큰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더 커다란 실망도 하게 되는
것 같더군요. 사실 얼마 전에는 교구의 어떤 신부님께 약간 서운한 감정을 가졌었답니다. 그 본당
교우들이 9월을 맞아서 성지순례 장소로 제가 있는 갑곶성지로 정했답니다. 그리고
그 신부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갑곶성지는 부자라서 굳이 갈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는 것입니다. 불과 한 달 전에 통장 안에 들어있는 잔액이 7,000원 밖에 되지 않았던
이곳 갑곶성지가 부자인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되면서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더군요
(마음만큼은 부자 맞습니다 ㅋㅋ). 더군다나 그 신부님은 이 갑곶성지를 한 번도 방
문하지 않으셨거든요. 이렇게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 믿음을 두고 있는 사람,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힘
을 얻기도 하고, 또 반대로 실망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어
요. 나는 나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는가 라는 생각……. 과
연 여러분은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실망을 안기고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그리고 커다란 힘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사랑과 힘을 보여 주면서, 우리 역시 그 모
습을 간직하면서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떤가요? 그러한 사랑과 힘
을 받기에만 급급하지, 정작 자기 자신은 그런 모습을 간직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요?
오늘 복음에는 헤로데가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세례자 요한의 목
을 벱니다. 그런데 그 명예가 헤로데의 마음을 과연 편하게 했을까요? 오히려 더 불
안한 마음을 갖게 되지요. 그래서 예수님을 보고는 세례자 요한이 아닐까 라는 의구
심을 갖으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습니다. 갈릴래야 영주인 헤로데가, 즉 막강한 힘
을 가지고 있는 그가 이렇게 불안해하는 것은 왜 일까요? 바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힘을 받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명예가
그렇게 중요했던 것이지요.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내 이웃에게
힘과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그때 마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될 것입니다.
내 가족에게 사랑과 힘을 전해 줍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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