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새벽을 열며 / 빠다킹신부님의 묵상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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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5-09-30 | 조회수700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2005년 9월 30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제1독서 바룩 1,15-22
주 우리 하느님은 공정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이와 같이 부끄러움을 당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주민들은 물론 우
리 왕들과 고관들과 사제들과 예언자들과 조상들도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죄를 지었고 그분에게 순종하지 않았으며 우리에게 내려 주신 주
님의 명령을 따라 살라고 하신 우리 주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집트에서 우리 조상들을 구출하신 그날부터 우리는 그분께 순종하지 않았으며 그
분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민족에게 젖
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려고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던 그때, 당신
의 종 모세를 통하여 내리셨던 그 재난과 저주를 오늘날 우리에게도 내리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예언자들의 온갖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악하게 기울어져서 모두
들 다른 잡신을 섬겼고 우리 주 하느님의 뜻에 맞지 않는 일을 행하며 멋대로 살았습
니다.
복음 루가 10,13-16
그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코라진아, 너는 화를 입으리라. 베싸이다야, 너도 화를 입으리라. 너희에게 행한 기
적들을 띠로와 시돈에게 보였더라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앉아서 재를 들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심판날에 띠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오히려 가벼운 벌을 받을 것
이다.
너 가파르나움아, 네가 하늘에 오를 것 같으냐?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꾸짖
으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말을 듣는 사람은 나의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배척하는 사람은 나를 배척하는 사람이며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
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
불만을 가지고 있던 새가 하느님을 찾아 왔어요. 그리고 말합니다.
서 위험에 빠졌을 때 자신을 지킬 수 있는데, 우리 새들은 아무것도 없이 당하기만
합니다. 우리에게도 뭔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을 주십시오.”
하느님께서도 생각해보시니 일리가 있는 말이에요. 그래서 새가 가지고 있었던 손
을 날개로 만들어 주셨답니다. 그런데 얼마 뒤에 다시 새가 하느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하느님, 하느님께서 새로 만들어주신 이 날개 때문에 너문 무거워서 전처럼 빨리
달릴 수도 없고, 손으로 하던 일을 입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더 불편해졌습니다. 왜
날개를 만들어서 저희를 더 힘들게 하십니까?”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호통을 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날아올라 적으로부터 피하라고 준 것이다.” 새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날개의 사용법을 몰랐던 것이지요. 단순히 내게 주어진 하
나의 짐으로만 생각했기에, 그 사용법을 알려는 노력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
면서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바로 지금 내게 짐이라고 생각되는 것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주저앉게끔 했던 것들이 바로 내가 하늘을 날아오르도록 하는 날개가
아니었을까요? 즉,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이 이 세상 안에서 잘 살 수 있도록 ‘날개’를
만들어주셨는데, 우리들은 그 사용법을 잘 몰라서 불평과 불만으로 일관하고 있었
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우리들의 잘못된 판단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질책의 말씀을 하십니다. 사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
수님의 질책은 단 두 가지의 경우뿐입니다.
하나는 위선을 일삼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질책하셨지요.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많은 은혜를 입고도 배신하는 사람들에 대한 질책입니다. 이번 경우는 후자의 경우에 속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그토록 많은 기적을 베푸
셨고 또한 그런 은혜를 받은 만큼 자신의 이웃을 위해서 그 사랑을 쏟아 부으라고 했
건만, 갈릴래아의 유명한 도시인 코라진과 벳사이다 그리고 가파르나움은 죄의 틀
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실 이 세 도시는 랍비들의 종교교육이 가장 성행
하던 종교도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만과 자기도취로 예수님의 가
르침을 외면했던 것이지요. 즉, 날개를 달아주었으나 그들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떤가요? 주님께 달아주신 날개를 얼마나 잘 사용하고 있나요?
나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 주신 그 날개의 효과를 최대한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는 오
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내게 주어진 날개는 과연 무엇일까요? 찾아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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