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풍경
빨간 고추 주렁주렁 매달려 노총각 자극하고 주황색 늙은 호박 입맛 다시게 하고 딱딱 입 열어 희고 흰 깨알 뿜어내며 고소한 냄새 주던 참깨... 열무 배추 무 쪽파... 텃밭들은 모두 사라지고 그 위에 하늘 높이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 대체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돈 몇 푼에 처마 끝에 얼기설기 방을 내고 그나마 텃밭을 가꾸어 근근히 살아가던 까만 주름 골이 깊이 패인 시골 할머니 쫓겨간 문간방 근처 공터에 지겨운 텃밭을 만들어 열무랑 가지랑 쪽파 심어 햇 지푸라기로 단을 만들어
고된 삶으로
정 들었던 아파트로 가는 신작로 언저리에 펼쳐놓고 핸섬한 사람들에게 팔고 있습니다.
뉘엿뉘엿 가을 햇살 서서히 긴 그늘 남기며 사라져 가는 갑자기 생긴 시골 아파트 단지 오가는 사람 시끌벅적하지만 종일 따가운 햇살에 목말라 신음하던 열무 몇 단 가지 몇 알 쪽파 몇 단 잔뜩 시들어 제 빛 잃고 급해진 할머니 얼굴 검붉게 상기된 주름과 주름 골마다 실개천이 생겨 슬픈 물이 흐르고 간절한 호객 소리 차가워진 가을 바람만 스쳐갑니다.
2005년 10월 9일
연중 28주간 주일 한글날 김모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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