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새벽을 열며 / 빠다킹신부님의 묵상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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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5-11-02 | 조회수1,075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2005년 11월 2일 위령의 날
제1독서 지혜서 3,1-9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에 있어서,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을 것이다. 2 미련한 자들의 눈에는 그
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재앙으로 생각될 것이며, 3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이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의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 눈에 의인들이 벌을 받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은 불멸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이 받는 고통은 후에 받을 큰 축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
들이 당신 뜻에 맞는 사람들임을 인정하신 것이다.
6 도가니 속에서 금을 시험하듯이,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을 번제물로 받아들이셨다.
<7 하느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 그들은 빛을 내고, 짚단이 탈 때 튀기는 불꽃처럼 퍼질 것이다. 8 그
들은 민족들을 다스리고 백성들을 통치할 것이며, 주님이 무궁토록 그들의 왕으로 군림하실 것이다.>
9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진리를 깨닫고,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안에서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께 뽑힌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제2독서 로마서 5,17-21
형제 여러분, 17 아담의 범죄의 경우에는 그 한 사람 때문에 죽음이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은총
의 경우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풍성한 은총을 입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거저 얻은 사
람들이 생명의 나라에서 왕 노릇 할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은총의 힘이 얼마나 더 큽니까!
18 그러므로 한 사람이 죄를 지어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은 것과는 달리 한 사람의 올바른 행위로
모든 사람이 무죄 판결을 받고 길이 살게 되었습니다.
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과는 달리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하느님
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20 법이 생겨서 범죄는 늘어났지만 죄가 많은 곳에는 은총도 풍
성하게 내렸습니다. 21 그래서 죄는 세상에 군림하여 죽음을 가져다주었지만 은총은 군림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게 하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합니
다.
복음 마태오 11,25-30
그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25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
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신 뜻이었습니다. 27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저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아버지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아들과 또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
들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의 그의 손자들은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식사 시간을 상당히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할아버지와 식사를 하던 손자가 “저... 할아버지...”하고 더듬거리며 할아버지에
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합니다. 이 모습에 버럭 화를 내며 “식사 중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지! 식사가 끝나고 말해
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겠어요. 손자는 깜짝 놀라서 하려던 말을 하지 못하고 그냥 입
을 다물고 말았지요.
식사 후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묻습니다. “아까 하려던 말이 무엇이니?” “이미 늦었어요. 아까 제가 말하려했던 그 순간, 할아버지 음식에 벌레가 들어 있었거든요.”
식사 시간에 조용히 하는 것이 식사 예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손자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자신의 고집대로만 하려고 화를 내는 바람에 벌레를 먹게 되었고, 손자는 겁
을 먹고 주저하다가 바른 말을 해야 하는 타이밍을 놓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어떤 일이든 적당한 타이밍이 있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되네요. 그런
데 우리들은 그 타이밍을 놓쳐 버릴 때가 너무나 많지요. 좋은 일을 할 타이밍인데, 남의 눈치
를 보다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자신의 잘못을 용서 청할 수 있는 타이밍에서도, 한발자
국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가 없어서 못하게 되는 경우가 또 얼마나 많았던 지요. 그리고 사랑해
야 할 타이밍에서는 이것저것 따져보다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그냥 생각으로만 그쳐
버릴 때도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타이밍을 놓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100% 그 뒤를 따르게 되는 것이 바로 후
회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과거에 연연하면서 아쉬움을 말하곤 하지요. 그렇다고 자신이 놓친
타이밍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즉, 우리 가톨릭교회가 죽음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면서 죽은 이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들의 모습도 되돌아 볼 수 있는 성찰의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죽음이 왔을 때, 내가 이 세상에서 놓쳐
버린 타이밍들을 회복할 수가 있을까요? 그때는 아무리 후회를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
다.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찾아왔을 때, “아직
준비가 안 되었어요. 제가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마친 마음에 가겠습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피
할 수 있을까요?
위령성월 안에는 죽음을 깊이 묵상하고, 지금 현재를 보다 더 충실하게 살아가라는 의미도 담
겨 있습니다. 즉,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타이밍을 잘 맞추는 삶을 간직해야 하는 것입
니다. 바로 그 모습이 죽음을 가장 잘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보다 먼저 돌아가신 연령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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