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 17,1-10
무자비한 주인과 불쌍한 종이 오늘 복음에는 등장한다.
하루종일 들일을 하고 돌아온 종은 집안에서의 자신의 할 일까지 모두 끝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음식을 먹고 쉴 수가 있다.
그 종이 자신의 책무를 다 마쳤다고 해서
주인이 고마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예수께서는 말씀 하신다.
약자를 두둔하시는 분이 오늘은 이상하다.
충실한 종을 두둔하시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주인을 두둔하시다니 어찌 된 것인가?
예수께서는 우리의 불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더 기막힌 말씀을 하신다.
"너희도 명령대로 모든 일을 다 하고 나서는
'저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라고.
이 "너희도"가 누구인가?
사도들(5절), 양치는 일을 하는(7절) 이들.
즉 '좋은 행동의 본보기'(디도 2,7)가 되어야 할 공동체의 수장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가뜩이나 일꾼들을 구하기 힘든 요즘이다.
이렇게 요구하시는 것이 많아서야 누가 힘들어서 직책을 맡으려 하겠는가?
예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인과응보 사상에 흠뻑 젖어있던 당시 사람들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다.
즉 맡은 바 사명에 충실한다면 하느님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시리라는 생각.
남보다 더 큰 일을 맡아 한다면 그에 걸맞은 대우가 마련되어 있으리라는 계산.
마치 자신이 채권자이고 하느님이 채무자이기나 한 것처럼 생각했던
그런 잘못된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주시려는 것이다.
당시의 바리사이파와 율법 학자들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던 인과응보사상.
즉 그들은 자신의 공로와 업적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 생각에 철퇴를 가하고 계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은 그와 같은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특별히 경계하신다.
아무리 자신을 돌볼 틈도 없이 남을 위해 봉사와 헌신을 했다 하여도
하느님께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요구할 자격은 없다.
왜냐하면 그는 종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보잘 것 없는 종이라는 것이다.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우리를 벗이라 하셨고 종이라 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여기서는 분명히 종, 그것도 가장 작은 종이라고 언급하신다.
왜일까?
종과 주인의 관계라는 것은 고용주와 종업원의 관계에서 처럼
일에 상응하는 댓가를 요구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데에 초점이 있다.
아무리 주님이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하셨다해도 그것은 선물일 뿐이지
결코 그 대가를 지불하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시다.
그러므로 당신의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주님 앞에서의 '겸손'이라는 덕목이다.
교회 안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봉사하고 있을 때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 듯 착각에 빠져 자만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제정신을 차리고 보니 누군가를 위해서 봉사를 한다기보다
나를 위해서, 사람이 되라고 불러 써주시는 일임을 깨달았다.
가치 있는 삶을 살게 해주시는 그분의 부르심은 사실상
나를 참된 인간으로 살게 하시려는 은총의 부르심이다.
성서에 나오는 성조들, 예언자들, 사도들 역시 그 전에는 평범했던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불러 기어이 성조들로,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로 키워 주시는
주님의 부르심의 의도를 안다면 누가 기꺼이 그 일을 마다하겠는가?
누가 감히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겠는가?
"저희는 보잘 것 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2000. 11.4. 작성한 글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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