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아파트 주변엔
잘 여문 깨, 콩, 빛깔고운 빨간 고추들이
볕이 고운 소산한 가을 햇살아래
이웃 할머니들의 고운 때 엉긴 돗자리에서
하루 종일 빨갛게 무르 익어가고 있어요.
문득 문득 지나치다 돗자리에 널려있는
콩이며 깨며 고추들을 보노라면
저는 시골에서 자라지 않아
초가집 박넝쿨 우거진 고향집에 대한 향수는 없지만,
정겨운 고향마당에 온 것처럼 마음이 참 푸근푸근해져요.
햇살 정겨운 아침 무렵,
돗자리에 고추며 깨며 콩들을 너시는 일들이
지금은 시골집 정겨운 마당을 떠나
도심 생활을 하시고 계시는 저희 아파트 이웃 할머니들의
두고 온 고향에 대한 향수어린 소일거리이시랍니다.
가을볕이 따가우시다고 머리에 수건을 둘러쓰시고
종종 모여 앉으신 할머님들은 돗자리에
깨며 고추 등을 너시는 일로
하루를 여신답니다.
돗자리에 펼쳐있는 곡식들은 지난여름 송이땀 흘리시며
아파트 주변 공터, 할머님들만의 텃밭에서
손수 심으시고 수확하신 곡식 들이예요.
할머님들은 고유한 텃밭을 하나씩 가지고 계시는데,
그 텃밭이래야 땅임자가 아직 건물을 짓지 않은 공터로
여기저기 집들과 건물들 사이로 듬성듬성 놓여져있는
아주 작고 초라한 텃밭이지요.
그지만 그 작은 텃밭들은
우리 이웃 할머니들의 유일한 소일거리이시며
아주 중요한 할머님들만의 직장(?)이시고
또한 안식처(?)이시랍니다.
한동안 잡초무성하고 쓰레기 더미 뒤덮인 공터들이
어느새 할머니들의 텃밭으로 아주 예쁘게 자림해
정성스레 곡식들이 가꾸어지는 모습들을 보면
정말 마음이 즐거워져요.
그래서 저희 아파트 주변엔
이곳저곳 성긴 텃밭들과 호화로운 건물들,
주택들 그리고 촘촘한 아파트촌이
참 기묘한 부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그 작고 초라한 시골풍 텃밭에서
고추며 깨며 옥수수, 호박 등이
고운 볕아래 너울너울 달려있어
가끔씩 정겨운 시골 내음새에 젖어들곤 한답니다.
성당 가는 길에도 벌써 몇 개의 그 작은 텃밭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황토빛 흙냄새에
절로 콧노래를 부르며 성당에 가곤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쾌 많은 공터 텃밭에
여름이면 파란 고추, 호박들, 깨들이
주렁주렁 열려있었는데
텃밭들이 점차 줄어들고
대신 새로운 건물들과 집들이 들어서고 있어요.
한 해가 지날수록 할머니들의 그 작고 초라한 텃밭들은
줄어들고 있지만, 그래도 할머니들은
올해도 씩씩하고 용감하게 여름 내내
곡식들을 심으시고 가꾸시고 또 수확하셨어요.
할머니들이 가꾸신 곡식들은 대부분 우리 아파트 동네에서
이웃끼리 서로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나누어 먹지요.
서로 서로 이웃 사랑과 이웃 마음들을
소박하게 나누어 먹는 우리 동네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들이죠.
사실 할머니들이 손수 가꾸신 콩이며 호박, 깨등은
아주 작은 나눔 들이지만
우리 이웃들은 할머니들이
한 바가지씩 가득 가득 퍼주시는 사랑들을
서로 나누어 먹는답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사기 힘든 아주 값비싼,
사랑이 듬뿍 담긴, 고구마, 깨, 콩들이죠.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시간 ♬딩동 하는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면, 검게 그을리고 주름진 얼굴에
함박 천진한 미소를 지으신 이웃 할머님이
앳된 애호박이나 깻잎 혹은 배추포기를
한가슴 안고 서계세요.
"응, 이거..밭에서 방금 호박하나 따왔어."
소박하게 내미는 갓따온 설익은 애기호박하나.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온 것보단 어딘가 예쁘지도 않고
촌스러워 보이는 듯한 호박 하나이지만
어떤 값비싼 반찬보다도 더 영양가 많고
푸근한 호박 국이나 호박나물이 되어
우리 집 식탁에 오른답니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의 그 갓따온 애기 호박하나에
감사드리며 정말이지 갖은 정성과 갖은 양념을 다해
맛있게 할머니들의 사랑, 그 마음을 밥에 얹어
맛나게 먹는답니다.
맛나고 달게 먹어드리는게 할머니들이 애써 가꾸시고
수확하신 노고들에 대한 감사이며,
그게,
이웃 할머니들의 유일한 기쁨이자 낙이 아니실까요?
"할머니 어제 따다주신 호박 맛있게 나물해 먹었어요."
하고 한 말씀드리면, 그 주름진 이마가 활짝 피어지며
"으~~응, 그랬어? 또 따다 줄께..."
하시며 입가에 함빡 웃음을 지어보이시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천진해 보이시는지...
노동의 보수나 대가도 없이 여름 내내
당신들만의 그 작고 초라한 울타리 쳐진 텃밭에서
땀 흘리시며 가꾸신 곡식들을 이웃들에게 나누어 드리고
또 우리 이웃들이 맛나고 달게 먹어드리는게
우리 아파트 할머니들의 소중한 일상의 기쁨이세요.
또한 노년의 그 어떤,
당신들만의 존재 이유와 기쁨이시기도 하시구요.
가끔씩 수확이 많으시면
할머님들은 시장부근에 가셔서 자리 하나 펼치시고
보따리 장사도 하셔서 코흘리개 손주들을 위한
쌈짓돈 마련도 하시나 봐요.
늦은 가을엔 어데 선가 고구마들도 캐 오시고
늙은 호박들도 따오셔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우리 아파트 할머님들.
해가 갈수록 가끔씩 돗자리에 고추를 말리시는
할머니들의 투박한 기침소리들이 왠지 힘이 없고
굽은 등이 올핸 더 굽어보이시지만,
그래도 할머니들은
지난여름에도 열심히 텃밭을 가꾸셔서
늦은 가을햇살 아래 손때 엉긴 돗자리들에다
또 빨간 고추며 잘 여문 깨, 콩들을 말리시고 계세요.
소산한 가을볕에 잘 익은 깨며 고추들
이웃들에게 나누어주시고
또 멀리 타지에 나가있는 아들 딸네들에게도
나누어 주시려고요.
오늘 이른 아침에도 이웃 할머니께서
손수 캐 오신 투박하고 못생긴 고구마들을
한광주리 가슴에 안고 저희 집 문을 두드리셨어요.
참, 자기 맘대로 생긴 고구마들을
어데서 그렇게 손수 캐 오셨는지..
귀여운(*^^*) 할머님들이 나누어 주시는
갓따온 못생긴 애기 호박이나 깻잎, 파, 고추, 고구마들은
우리 마음속에
또 하나 작은 사랑의 텃밭을 일구어주신답니다.
지금 우리들의 마음속엔
빨간 고추며, 가지, 옥수수, 콩,호박등이
소담스럽게 주렁주렁 열려있어요.
그게 바로 사랑의 열매가 아닐까요?
늦가을의 고엽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우리 아파트 주변엔
한참 가을볕에 이쁘은 빛깔들로 물들어 익는,
빨간 고추들이 단풍처럼 빨갛게 물들어가고 있어요...!
♧ 어제 경기도 파주에 사시는 제 외숙모님께서
뒤뜰 공터에 손수 심으셔서 가꾸신 열무 김치를 맛있게
담그셔서 택배로 저희 집에 우송해 주셨더군요.
어제 저녁, 그 열무 김치로 공기 밥을 무려 세 그릇(^^*)이나
먹으며 언젠가 게시판에 써 두었던 이 글이 생각나 다시 한번
올려 보았어요.*^^* 늦가을이 지나 초겨울로 접어드는 요즘,
문득 계절이 지나가는 아쉬운 마음 한 켠 울컥 붙잡고 싶고,
그리운 것들이 많아집니다. 할머니들처럼 사랑하는 마음,
정성스런 마음을 나누면 어느 시(詩) 제목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가 아니련 지요.
오늘도 행복하시고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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