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새벽을 열며 / 빠다킹신부님의 묵상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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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5-11-25 | 조회수962 | 추천수11 | 반대(0) 신고 |
2005년 11월 25일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 얼음 꽃 -
제1독서 다니엘 7,2-14
[나 다니엘은] 2밤에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하늘 끝 사방에서 갑자기 바람이 일면
서 큰 바다가 출렁거리는데, 3 바다에서 모양이 다른 큰 짐승 네 마리가 올라왔다.
4 그 첫째 것은 몸이 사자같이 생겼고 독수리 날개를 달고 있었다. 내가 바라보고 있
는 사이에 그 짐승의 날개가 뽑혔다. 그러더니 땅에서 몸을 일으켜 사람처럼 발을 딛
고 서는 것이었다. 그 짐승은 사람의 마음까지 지니게 되었다.
5 둘째 짐승은 곰같이 생겼는데 몸을 한쪽으로 비스듬히 일으키고 있었다. 그 짐승
은 이빨 사이에 갈비 세 개를 물고 있었는데 어디서 “일어나 고기를 실컷 먹어라.”
하는 말이 들려왔다.
6 내가 또 바라보니 이번에는 표범같이 생긴 짐승이 올라오는데 옆구리에는 새 깃이
네 개 달려 있었고 머리도 넷이었다. 그 짐승은 권력을 받았다.
7 그날 밤 꿈에 본 넷째 짐승은 무시무시하고 끔찍하게 생겼으며 힘도 무척 세었다.
쇠로 된 이빨로 무엇이나 부서뜨려 먹으며 남은 것은 발로 짓밟았다. 먼저 나온 짐승
들과는 달리 뿔이 열 개나 돋아 있었다.
8 그 뿔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자니 그 몸에서 작은 뿔 하나가 새로 돋아났다. 그러
자 먼저 나온 뿔 셋이 그 뿔에 밀려서 뽑혀 나갔다. 그런데 그 작은 뿔은 사람처럼 눈
이 있고 입도 있어 큰 소리를 치고 있었다.
9 내가 바라보니 옥좌가 놓이고 태곳적부터 계신 이가 그 위에 앉으셨는데, 옷은 눈
같이 희고 머리털은 양털같이 윤이 났다.
옥좌에서는 불꽃이 일었고 그 바퀴에서는 불길이 치솟았으며, 10 그 앞으로는 불길
이 강물처럼 흘러나왔다. 천만 신하들이 떠받들어 모시고 또, 억조창생들이 모시고
섰는데, 그는 법정을 열고 조서를 펼치셨다.
11 그 뿔이 계속하여 외쳐 대는 건방진 소리를 한 귀로 들으면서 보고 있자니, 그 짐
승은 나의 눈앞에서 처형을 받아 시체가 박살이 나고 타오르는 불 속에 던져지는 것
이었다.
12 다른 짐승들은 권세는 빼앗겼으나 목숨만은 얼마 동안 부지하도록 버려졌다.
13 나는 밤에 또 이상한 광경을 보았는데 사람 모습을 한 이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 태곳적부터 계신 이 앞으로 인도되어 나아갔다.
14 주권과 영화와 나라가 그에게 맡겨지고 인종과 말이 다른 뭇 백성들의 섬김을 받
게 되었다. 그의 주권은 스러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갈 것이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하리라.
복음 루가 21,29-33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29 “저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들
을 보아라. 30 나무에 잎이 돋으면 그것을 보아 여름이 벌써 다가온 것을 알게 된다.
31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온 줄
알아라.
32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가 없어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
다.
33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 형제님은 신앙의 힘으로 자신의 모든 병이 치유될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늘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드디어 하느님께서 응답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조금 이상합니
다. “사랑하는 아들아! 집 앞의 바위를 매일 밀어라!” 그 형제님 집 앞에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 때문에 집에 들어오고 나가
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바로 이 바위를 매일 같이 밀라는 하느
님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따라서 이 형제님은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하
느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는 기쁨에 그리고 이 바위를 밀어 놓은 다음 자신의
병을 치유시켜 주실 것이라는 희망에 매일 같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바위를 밀었
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글쎄 8개
월이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자신의 꿈에 대한 회의가 생기는 것
이었어요. ‘아무리 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 바위인데, 정말로 하느님께서 내
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혹시 개꿈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떠나지를
않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는 바위의 위치를 자세히 측량해 보았습니다. 그 결
과 바위는 단 1인치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8
개월 동안 헛수고를 했다는 생각에, 원통해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순
간 하느님께서 이 형제님께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당신 때문이에요. 하느님 말씀을 듣고 지난 8개월 동안 희망을 품고 바위를
밀었는데, 바위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움직이지도 않는 바위를 왜 옮
기라고 하신 것입니까? 왜 이렇게 쓸데없는 일을 저한테 시키신 것입니까?”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웃으시며 말씀하셨어요.
뿐이지. 이제 거울로 가서 너 자신을 보렴.” 거울 앞에 선 그 형제님께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거울에 비춰진 남자는
병약한 남자가 아니라 근육질의 남자였던 것입니다. 맞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바위를 움직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형제님을 변화시키는 것에 하느님의 뜻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바위를
옮겨놓는 것보다 바위를 미는 행동 자체가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들의 모습도 자신이 변화되었다는 사실보다는 그 바위를 움직이지 못했다고
절망하는 이 형제님처럼, 스스로 세운 결과에만 집착하고 절망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눈앞의 현실은 그 바위가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에게 다
가오는 고통과 시련 역시 조금도 변화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시선을 조금만 바꾸면 이 고통과 시련으로 인해서 너무나 많이 변화된 내 자신
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연의 섭리를 보면서 하느님 나라가 다가온 것
을 알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들의 일상 삶 안에 깨우침을 주시는 하느님을 발
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을 보면서 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지요. 혹시 나는 움직이지 않는 바위만을 보면서 한숨만 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요? 이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고 절망하지 마세요. 그것도 나를 위한 하느님
의 배려니까요.
나를 향한 배려에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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