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극작가 이오네스코가 쓴 3막극 ''코뿔소''란 작품을 언제 읽었는
지 기억이 까마득하다. 그러나 그 주인공으로부터 받은 신선한 충격만은
지금도 가슴 속에 살아있기에 서재에 쌓인 먼지를 털어가며 프랑스전집을
찾아 그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작고 평화스러운 시골 마을에 아프리카에서나 볼 수 있는 코뿔소 한 마
리가 나타나 소동을 부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수가 늘어간다. 마을 전체
가 발칵 뒤집혔다. 사람들은 무섭다고 도망치기도 하고 물리쳐야 한다고
야단들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마을 사람들은 이마에 뿔이 나고 피
부가 딱딱한 암록색으로 서서히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드디어 코
뿔소와 한 무리가 되어가는 병에 걸린다. 그러나 이 이상한 코뿔소란 전염
병은 본인이 원치 않으면 절대로 걸리지 않는 전염병이다.
"나는 인간으로 남겠다"고만 하면 그냥 인간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
나 마을 사람들은 그 보기 흉한 코뿔소를 스스로 선택하고 모두 코뿔소가
되어간다. 베랑제라는 청년만은 끝없는 번민과 갈등 속에서 고민하다가 끝
까지 인간으로 남기를 선언한다.
그 결과 베랑제는 변신한 코뿔소 무리들로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갖은 회
유와 압력을 받게 되고 결국 마을의 미운 오리새끼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인간 되기를 포기한 채 딱딱
한 암록색 가죽을 스스로 쓰고 보기 흉한 코뿔소가 되어가고 있다. 그들은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그들만의 요란한 울음소리로 우리들을 놀라게 한
다.
한국은 자식교육을 시킬 곳이 못된다며 아내와 자식을 외국으로 내보내
는 ''기러기 아빠''라고 불리는 코뿔소가 있고, 동료와 상관의 뜻을 존중한
다며 남의 눈치만 보며 안일하게 소일하는 ''국가 공복'' 코뿔소도 있다. 독
자들이 원한다며 눈 뜨고 볼 수 없는 야한 것들로 그 엄청난 지면을 가득
메우기를 일삼는 월간지나 잡지 출판사도 코뿔소가 아닐 수 없다. 여론이
라는 것을 앞세워 자기 신념을 팽개치고 시류에 영합해 쉽게 살거나 성공
(?)하려는 코뿔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나도 어쩌면 코뿔소와 한 무리가 되기를 원했으며 쉽게 인생을
살아온 코뿔소가 아니었던가! 자신을 채근해 본다. 젊은 베랑제처럼 가는
곳마다 미운 오리새끼가 되더라도 자기의 개성과 양심, 인간으로서 우월성
을 고집하며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진정한 인간됨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
들이 이 사회를 지배하기를 기도한다.
- 정하득(대전광역시 대덕구 비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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