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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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병찬 | 작성일2006-02-03 | 조회수562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옷타비오 신부를 통해 사제들과 신자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아들아,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써라. 예수님께서 만족해 하지 않으신다고 말하여라! 나는 ''사목''의 본질 문제에 대한 목자들과 사제들의 극심한 무분별을 보면서, 아무래도 만족히 여길 수가 없으니 말이다. 나 예수는 공생활을 하는 동안 진리를 선포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병자들을 치유하고 마귀들린 이들을 해방시켜 주기도 하였다. 구마를 내 ''사목''의 본질적인 한 부분으로 여겼던 것이다. 오늘날 목자들은 그 일을 사목의 한 부분으로 시행하지 않는다. 직접 구마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아주 드물게 시행하는 경우에도 다른 이들에게 맡기는 게 고작이다.
내적 부동(不動)주의
오늘날 주교들이 취하는 태도는, 항상 관례적인 것이라면 모르되, 분명 내가 바라는 태도도 아니고 원하는 태도도 아니다. 자녀들이 괴로워하고 있는 곳에 아버지가 없다는 것, 아버지와 함께 있을 수 있는데도 그 자리에 없다는 것은 정말이지 인지상정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런 일이 흔히 일어나고 있다. 또한, 아버지가 자기 대신 다른 사람을 보내어 괴로워하는 아들 곁에 있게 하는 것 역시 그만큼 가혹한 일이다. 게다가, 참으로 많은 자녀들이 분명히 고통을 겪고 있건만, 아버지가 그 고통의 존재조차 믿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터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흔히 일어나고 있다. 이보다 더한 일도 있으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써라. 어떤 아버지는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 연민의 정으로 - 나는 연민이라고 했지, 정의라고 말하진 않았다 -그의 자녀들을 돌보는 이들에게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도 한다. 이는 도무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요, 모든 부성애를 역행하는 짓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열광적인 활동의 희생자들이다. 나의 희생 제물이 되는 것이 훨씬 나으련마는! 내 희생 제물이 된 영혼들은, 반대로 외적으로는 움직이지 않지만 내적으로는 매우 많이 움직이며 매우 활동적인 이들이다. 영혼들을 구하는 것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하느님 정의의 내리치심을 만류할 수 있었던 것도, 그렇게 자진해서 희생 제물이 된 사람들이다. 그런 희생자들이야말로 교회의 진정한 누룩이요 효소이다. 나는 그들의 청은 무엇이든지 들어 주지만, 외적인 활동주의에 빠진 허다한 목자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교회의 침체
고통받는 수많은 영혼들의 문제를 검토할 필요도 있으므로, 주교들은 영혼의 목자들과 선의의 사제들이 어떤 이유로도 활동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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