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의 가난한 자들"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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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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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6-03-16 | 조회수748 | 추천수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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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3.16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예레17,5-10 루가16,19-31
하느님의 가난한 자들이,
오늘 복음에서 천상의 아브라함이 어떤 부자를 향한,
“너는 살아있을 동안에 좋은 것을 마음껏 누렸지만,
과연 우리들은 어느 쪽에 해당됩니까?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번쩍 눈에 들어온 다음 사실입니다. 어떤 부자는 익명으로 이름이 없었지만,
히브리어 엘레아자르의 음역인 라자로라는 이름은
가난한 자들을 하느님이 도우신다는
부자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반면 하느님이 도우신다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는
과연 누가 내적으로 진정 부자요 가난한 자인지 묻게 됩니다. 1독서의 말씀대로 마음이 주님께 멀리 떠난 어떤 부자,
이와 반대로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둔 가난한 라자로,
어느 정도의 의식주만 해결된다면
부자들은 하느님 나라 들어가기가
문제는 어떤 부자와 가난한 라자로와의 단절입니다. 아주 가까이 살았지만 완전히 무관함 속에,
미움보다 더 무서운 게 무관심, 무관계의 단절의 삶입니다. 하느님 보내신 구원의 표지가 바로 라자로였는 데 말입니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바로 살아생전, 하느님과 어떤 부자, 어떤 부자와 라자로,
이 복된 미사시간 좋으신 주님은 당신께 신뢰를 둔 마음 가난한 우리 모두에게 당신 은총으로 주님과 우리와의 단절의 큰 구렁을, 형제들 서로간의 단절의 큰 구렁을 메워주십니다.
“주님께 신뢰를 두는 사람은 행복하여라(시편40,5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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