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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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복순 | 작성일2006-04-21 | 조회수549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마르 16, 9-15)
그리고 사실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삼 세 번이라는 말이 있듯이 다짐하는 말이며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제자들이 믿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었던가를 이야기 해준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믿지 않았다는 제자들의 불 신앙을 강조하는 것이다. 사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한번도 우리 눈으로 확인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당시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했으리라. 우리는 복음을 통해서 그나마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그것을 우리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지만 그 당시 제자들은 자기들과 함께 생활하셨던 분이 자기들이 보는 앞에서 불행하게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분명히 보았는데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믿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부활 신앙은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부활은 오직 신앙으로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은 이성의 세계를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 세상의 삶을 초월하는 또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완고한 마음은 자기 혼자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하는 마음이다. 즉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아니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마음이다. 자기 스스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교만한 사람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막달레나 마리아는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찾아가 소식을 전하였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시골로 가던 두 사람도 돌아와서 다른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으나 다른 제자들은 믿지 않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삶의 자세가 무척 역동적인데 반해 마음이 완고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정지된 상태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마음이 완고한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기는커녕 슬퍼하며 울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삶의 변화가 있었지만 마음이 완고한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내 마음에 어떤 힘이 솟구치는가? 복음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전달되는가? 그렇다면 예수님과 더불어 그 사람도 부활한 사람이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 없이, 충동없이, 기쁨없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완고한 나의 마음 때문이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완고한 마음이 개방되지 않는 한, 부드러워지지 않는 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지 못할 것이며 복음 선포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리 위대한 선물이라도 내 것이 될 수 없다. 부활이 선물이 될 수 있는 것은 받아들이는 이의 몫이다.
그러나 내가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는 부활할 수 없다.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변화될 수 있다.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온유한 마음, 부드러운 마음을 지닐 수 있다.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부활 할 수 있다.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영적인 감각을 지닐 수 있다.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관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매일 말씀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말씀에서 얻는다.
마음이 완고하여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 제자들의 마음이 오늘 나의 마음은 아닌지 우리 마음을 들여다 보자. -유광수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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