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4월 26일『야곱의 우물』- 세상 물정 모르는 당신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26 조회수563 추천수11 반대(0) 신고
     
    부활 제2주간 수요일 - 세상 물정 모르는 당신  
    
    
    [요한 3,16-­21]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
    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 황순찬 (송파정신보건센타) - 
    
    
    ‘하느님 외아들을 믿지 않는 자/어둠을 더 사랑한 자/악한 일을 일삼는 자/ 
    자기 죄상을 은폐한 자/빛을 미워하고 멀리한 자’라는 구절이 마치 김지하의 
    ‘오적(五賊)’처럼 눈에 박힌다. 
    
    나는 가끔 예수님이 하느님의 얼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온갖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동원하여 인간과 소통을 해봤지만 별 진전이 없자 당신의 얼굴인 예수를 보낸 것이 아닐까?
    우리도 전화 통화를 하다가 상대방이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거기 어디야? 내가 그리로 갈게. 우리 (얼굴)보면서 이야기하자”고 한다. 그런데 하느님이 택한 수단이 효과가 썩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기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만이 하느님의 얼굴, 예수님을 희망으로 생각하였으니 말이다. 주류사회의 대부분은 예기치 않은 예수님의 출현에 대해 ‘이거 어디서 굴러먹은 말 뼈다귀야?’라고 반응한다.
    그래서 요한복음 저자가 오늘은 좀 화가 났다. 하느님은 자신의 얼굴을 들이 밀면서까지 소통을 원하시는데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격적 만남을 절대사절하고 있으니 격한 표현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밑바닥 신원으로는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것을 정말 몰랐을까? 사람들 눈에 예수님은 무자격자였고, 일신의 거처도 없는 떠돌이였으며, 고린내 풀풀 나는 지지리 궁상 그 자체였다.
    그런 예수를 사람들이 거부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당대의 사람들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하느님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너무 몰라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 옛날부터 성경과 교부들은 예수님이 그렇게 사람들의 몰이해 속에 십자가의 최후를 마치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하느님의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렇게 복잡한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이렇게 기도하고 싶다. ‘하느님, 제발 사람들에게 통할 수 있는 모습으로 오십시오. 행여 그게 당신 뜻이 아니라면 우리가 당신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주십시오.’
    
    온갖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동원하여 인간과 소통을 해봤지만 
    별 진전이 없자 당신의 얼굴인 예수를 보낸 것이 아닐까? 
    
    
    오늘은 오래전에 부르던 복음성가 곡을 골라보았습니다. *^^*
    이 곡을 영어로 부르면 Don't you know my friend?로 시작합니다.
    
    이 곡을 좋아하게 된 것은/아주 오래전, 선교사님들과 Bible Study를 공부하거나, 모임에 참석하기를 즐길 때였으니 20대 초반의 일입니다.
    여고동창의 부친께서 미8군 군목으로 계시기에, 주일날마다 용산에 있는 8군 교회로 예배를 드리러 갈 때가 있었습니다. 들어갈 때에, 8군 교회에 있는 분이나 패스가 있는 분이 나와서 데리고 들어가야 하는 불편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 날 마침, 친구가 늦는 바람에... 흑인 영감님 한 분이 저를 데리고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함께 걸어가면서, 그분의 첫 마디가... 'Do you know my friend?' 였습니다.
    하하, 제가 그분의 친구를 어찌 알겠습니까! 그래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니, 'My friend is Jesus.' 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간단한 영어를 못알아들어서가 아니라, 그 말뜻을 도무지 이해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니, 이 양반좀 봐라!... 내 주님을 '친구'라고 부르네... 친구라니↗ ^ ^
    그 분은 내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긴 이야기들은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그가 물었던... 'Do you know my friend?' 는 분명 앗! 나의 사고의 전환점을가지고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 예수님을 神的인 존재로만 생각하고 있었고, 예수님이 친구처럼 그렇게 제 가까이에 계심을 알지도 못했으니 당연히 이해가 되지 않는 질문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내 삶에 커다란 획을 그었던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 복음 3장 16절입니다. 성경과 성서의 번역을 옮겨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이처럼 사랑하사...가 가슴으로 느껴질 때에...
    주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며 살아 갈 수 있다는
    이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 앗! 나의 아부쥐라는 것이 아닙니까!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질 때에 눈물이 주루루룩 흐릅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다는 것, 하느님의 자녀로, 새생명으로 태어났다는 것,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음이요, 환산할 수 없는 것이지요...
    저는 가끔 집 가까이에 있는 Trinity 삼위일체 성당으로 미사를 갑니다. 그때마다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 삼위일체를 믿는다는 것이 바로 은총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삼위일체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될지 고민할 때가 있었습니다. '너희들은 나를 무엇이라고 부르니? / 선생님이요... 집에 가면 우리 어머님은 나를 '영숙아...'라고 부르신단다. 직장에 가면 동료들은 '미스 조'라고 나를 부르지...'
    부르는 이름은 모두 다르지만, 같은 사람인 것처럼... 하느님은 한 분이신데, 그분의 모습에 따라서 우리는 성부,성자, 성령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란다...
    하하, 아이들은 금새 이해를 하더군요.. 우리의 언어로는 이렇게뿐이 설명할 수 없는 한계를 느낍니다. 온갖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동원하여 인간과 소통을 해봤지만 별 진전이 없자 당신의 얼굴인 예수를 보낸 것이 아닐까? 이 묵상글을 대하니, 많은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얼마나 갑갑하셨으면 직접 내려오셨을까요...
    대대적으로 환영을 해도 시원치 않은 판에... 얼마나 많이 냉대를 받으셨으며,
    나중에는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그분의 사랑을 드러내신 주님의 놀라운 사랑이 봉헌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새롭게 느껴집니다.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여정중 오늘은 제 32일째입니다. 그 중에 나오는 이 말씀이 가슴판에 꼽힙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복음 15장 말씀 중에서]
    
    세상 물정 모르는 당신이라고 황순찬 님은 말씀하십니다...
    하하, 아마 우리도 그분의 제자이기에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나를 친구라고 불러주시는 그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히 알게 되는 우리들이기를 바라면서, 글자의 기도에 함께 두 손을 모읍니다.
    
    그러나 그렇게 복잡한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이렇게 기도하고 싶다. 
    
    ‘하느님, 제발 사람들에게 통할 수 있는 모습으로 오십시오. 행여 그게 당신 뜻이 아니라면 우리가 당신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주십시오.’
    
    하루하루 남은 날자가 세어지는 것이...
    제가 얼마나 야곱의 우물동이를 사랑했는지 느껴지는 날들입니다.
    
    혹시 하나님이라고 불려지는 복음성가라서 예민해지는 분이 계시는지요..
    갈라진 우리들의 형제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이라고 많이 불러드리십시다.
    하나님, 하느님... 이런 단어들이 무에 그리 중요한지요...
    우리가 같은 아버지의 자녀들이라는 것, 같은 아빠 하느님을 서로 다르게 부르고 있을 뿐입니다.
    신교의 형제자매들에게만 일치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어느 면에서 구교신자인 우리들이 먼저 일치를 위해서 노력해야 될 것이라고, 배워야 될 부분도 많다는 것을... 모기만한 목소리로 외치고 갑니다. *^^*
    
    ♬ 주를 아는가 - 복음성가 ♬
    
    
    주를 아는가 주를 아는가 그이름 예수 독생자 예수 사랑의 주님
    주는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 독생자되신 우리의 구세주
    
    주를 아는가 주를 아는가 그이름 예수 독생자 예수 사랑의 주님 주는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 독생자되신 우리의 구세주
    
    
    
    
    소스입니다.*^^*
    
    <ul><img src=http://www.sammu.or.kr/data/jesus/jesus31.jpg>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부활 제2주간 수요일 - 세상 물정 모르는 당신</b>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3pt">
    <b>[요한 3,16-­21]</b>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
    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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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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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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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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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b>
    ※『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 황순찬 (송파정신보건센타) - </b>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하느님 외아들을 믿지 않는 자/어둠을 더 사랑한 자/악한 일을 일삼는 자/ 
    자기 죄상을 은폐한 자/빛을 미워하고 멀리한 자’라는 구절이 마치 김지하의 
    ‘오적(五賊)’처럼 눈에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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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끔 예수님이 하느님의 얼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온갖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동원하여 인간과 소통을 해봤지만 별 진전이 없자 
    당신의 얼굴인 예수를 보낸 것이 아닐까? 
    <br>
    우리도 전화 통화를 하다가 상대방이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거기 어디야? 
    내가 그리로 갈게. 우리 (얼굴)보면서 이야기하자”고 한다. 그런데 하느님이 
    택한 수단이 효과가 썩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br>
    기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만이 하느님의 얼굴, 예수님을 희망으로 
    생각하였으니 말이다. 주류사회의 대부분은 예기치 않은 예수님의 출현에 
    대해 ‘이거 어디서 굴러먹은 말 뼈다귀야?’라고 반응한다. 
    <br>
    그래서 요한복음 저자가 오늘은 좀 화가 났다. 하느님은 자신의 얼굴을 들이
    밀면서까지 소통을 원하시는데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격적 
    만남을 절대사절하고 있으니 격한 표현이 나올 만도 하다. 
    <br>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밑바닥 신원으로는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것을 정말 몰랐을까? 사람들 눈에 예수님은 무자격자였고, 일신의 
    거처도 없는 떠돌이였으며, 고린내 풀풀 나는 지지리 궁상 그 자체였다. 
    <br>
    그런 예수를 사람들이 거부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당대의 사람들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하느님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너무 몰라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 
    <br>
    물론 그 옛날부터 성경과 교부들은 예수님이 그렇게 사람들의 몰이해 속에 
    십자가의 최후를 마치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하느님의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br>
    그러나 
    그렇게 복잡한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이렇게 기도하고 싶다. 
    ‘하느님, 제발 사람들에게 통할 수 있는 모습으로 오십시오. 행여 그게 
    당신 뜻이 아니라면 우리가 당신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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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g src=http://www.sammu.or.kr/data/jesus/jesus05.jpg width=550>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온갖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동원하여 인간과 소통을 해봤지만 
    별 진전이 없자 당신의 얼굴인 예수를 보낸 것이 아닐까? </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오늘은 오래전에 부르던 복음성가 곡을 골라보았습니다. *^^*
    이 곡을 영어로 부르면 Don't you know my friend?로 시작합니다.
    <br>
    이 곡을 좋아하게 된 것은/아주 오래전, 선교사님들과 Bible Study를 
    공부하거나, 모임에 참석하기를 즐길 때였으니 20대 초반의 일입니다.
    <br>
    여고동창의 부친께서 미8군 군목으로 계시기에, 주일날마다 용산에
    있는 8군 교회로 예배를 드리러 갈 때가 있었습니다. 들어갈 때에,
    8군 교회에 있는 분이나 패스가 있는 분이 나와서 데리고 들어가야
    하는 불편한 점이 있었습니다.
    <br>
    그 날 마침, 친구가 늦는 바람에...
    흑인 영감님 한 분이 저를 데리고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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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걸어가면서, 그분의 첫 마디가...
    <b><big>'Do you know my friend?' </b></big>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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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 제가 그분의 친구를 어찌 알겠습니까!
    그래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니, 
    <b><big>'My friend is Jesus.'</b></big> 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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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그 간단한 영어를 못알아들어서가 아니라,
    그 말뜻을 도무지 이해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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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이 양반좀 봐라!...
    내 주님을 '친구'라고 부르네... 친구라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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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분은 내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긴 이야기들은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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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물었던...
    <b><big>'Do you know my friend?' </b></big>는 
    분명 앗! 나의 사고의 전환점을가지고 오게 되었습니다.
    <br>
    저는 그 때까지 예수님을 神的인 존재로만 생각하고 있었고,
    예수님이 친구처럼 그렇게 제 가까이에 계심을 알지도 못했으니
    당연히 이해가 되지 않는 질문이었습니다.
    <br>
    오늘 복음에는 내 삶에 커다란 획을 그었던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 복음 3장 16절입니다.  성경과 성서의 번역을 옮겨봅니다.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b><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b><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이처럼 사랑하사...</b>가 가슴으로 느껴질 때에...
    주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며 살아 갈 수 있다는
    이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br>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
    앗! 나의 아부쥐라는 것이 아닙니까!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질 때에 눈물이 주루루룩 흐릅니다.
    <br>
    나 같은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다는 것,
    하느님의 자녀로, 새생명으로 태어났다는 것,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음이요, 환산할 수 없는 것이지요...
    <br>
    저는 가끔 집 가까이에 있는 Trinity 삼위일체 성당으로 미사를 갑니다.
    그때마다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 삼위일체를 믿는다는 것이
    바로 은총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br>
    어떻게 삼위일체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될지 고민할 때가 있었습니다.
    '너희들은 나를 무엇이라고 부르니? / 선생님이요...
    집에 가면 우리 어머님은 나를 '영숙아...'라고 부르신단다.
    직장에 가면 동료들은 '미스 조'라고 나를 부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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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는 이름은 모두 다르지만, 같은 사람인 것처럼...
    하느님은 한 분이신데, 그분의 모습에 따라서 우리는 성부,성자,
    성령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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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 아이들은 금새 이해를 하더군요..
    우리의 언어로는 이렇게뿐이 설명할 수 없는 한계를 느낍니다.
    <b>
    온갖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동원하여 인간과 소통을 해봤지만 
    별 진전이 없자 당신의 얼굴인 예수를 보낸 것이 아닐까? 
    </b>
    이 묵상글을 대하니, 많은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얼마나 갑갑하셨으면 직접 내려오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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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대적으로 환영을 해도 시원치 않은 판에...
    얼마나 많이 냉대를 받으셨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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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는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그분의 사랑을 드러내신 주님의 
    놀라운 사랑이 봉헌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새롭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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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여정중 오늘은 제 32일째입니다.
    그 중에 나오는 이 말씀이 가슴판에 꼽힙니다.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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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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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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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br>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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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b>
    [요한복음 15장 말씀 중에서]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세상 물정 모르는 당신</b>이라고 황순찬 님은 말씀하십니다...
    하하, 아마 우리도 그분의 제자이기에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br>
    그러나, 오늘 나를 친구라고 불러주시는 그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히 알게 되는 우리들이기를 바라면서,
    글자의 기도에 함께 두 손을 모읍니다.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그러나 그렇게 복잡한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이렇게 기도하고 싶다. 
    <br>
    ‘하느님, 제발 사람들에게 통할 수 있는 모습으로 오십시오. 
    행여 그게 당신 뜻이 아니라면 우리가 당신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주십시오.’ </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하루하루 남은 날자가 세어지는 것이...
    제가 얼마나 야곱의 우물동이를 사랑했는지 느껴지는 날들입니다.
    <br>
    혹시 
    하나님이라고 불려지는 복음성가라서 예민해지는 분이 계시는지요..
    <br>
    갈라진 우리들의 형제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이라고 많이 불러드리십시다.
    <br>
    하나님, 하느님...
    이런 단어들이 무에 그리 중요한지요...
    <br>
    우리가 같은 아버지의 자녀들이라는 것,
    같은 아빠 하느님을 서로 다르게 부르고 있을 뿐입니다.
    <br>
    신교의 형제자매들에게만 일치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어느 면에서 구교신자인 우리들이 먼저 일치를 위해서
    노력해야 될 것이라고, 배워야 될 부분도 많다는 것을...
    모기만한 목소리로 외치고 갑니다. *^^*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 주를 아는가 - 복음성가 ♬</b>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주를 아는가 주를 아는가 그이름 예수 독생자 예수 사랑의 주님
    주는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 독생자되신 우리의 구세주
    <br>
    주를 아는가 주를 아는가 그이름 예수 독생자 예수 사랑의 주님 
    주는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 독생자되신 우리의 구세주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9pt">
    <A href="http://cafe.daum.net/Coreansanctus" target=blank>
    <IMG height=70 src="http://cafe210.daum.net/cafeimg-pro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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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
    <UL>103위 한국순교성인</A></UL></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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