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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네 큰아버지는 도대체 몇 분인가?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01 조회수875 추천수17 반대(0) 신고
5월 1일 노동자 성 요셉 기념 미사-마태오 13장 54-58절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자네 큰아버지는 도대체 몇 분인가?>

 

며칠 전 새벽시장에서 일하시는 한 형제님을 만나 뵙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때 경기가 좋던 시절, 돈을 일일이 셀 시간이 없어서 큰 보따리에 왕창 집어넣고, 집에 돌아가서 흐뭇한 얼굴로 돈을 세던 시절도 회상하셨습니다.


요즘은 경기가 너무 좋지 않아 그저 현상유지만 해도 다행이랍니다. 그래도 지방에서 물건을 구매하러 올라오는 상인들을 맞이하기 위해 저녁 무렵 가게로 나가신답니다. 새벽까지 가게를 보십니다.


잠깐 가게 문을 닫은 다음 향하는 곳은 사우나도 아니요, 대폿집도 아니요, 바로 성당입니다. 저를 더 깜짝 놀라게 하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새벽미사가 시작되기 1시간 전에 그 어둠을 뚫고 신자상인들은 성당 회합실로 모이신답니다. 레지오 회합을 위해서. 그런 고된 가운데서도 그분들이 늘 먼저 챙기시는 것은 어려운 복지시설입니다. 뭣 하나 더 해주지 못해 안타까워하십니다.


오늘 근로자의 날이자 노동자 성 요셉 축일입니다. 저도 수도회 입회하기전 짧게나마 근로자로 생활했었습니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던 시절, 단 한 가지 수출에 목숨을 걸던 시절, 노동 강도가 만만치 않았었지요.


하루 온 종일 회사에서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주말도 반납해야만 했었습니다. 워낙 바빴던 나머지 근로자들의 당연한 권리였던 연월차도 마음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청년회 활동이나 교리교사 일로 어디 갈 때는 월차 결재를 맡으면서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곤 했습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어느 날 결재판을 들고 부장님께 갔더니,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이셨던 부장님께서 제게 하시던 말씀, “가만있어보자, 월차 사유가 뭐냐?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자네 큰아버지는 도대체 몇 분인가? 지난봄에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번 월차 썼었잖아? 기억 안나?”


태초부터 인간은 노동하도록 불림 받은 존재입니다. 인간이 다른 피조물들과 구분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가 노동입니다.


동물들은 그저 본능에 따라 살아갈 뿐입니다. 강아지가 노동하는 것 보신 적 있으십니까? 고양이가 뭔가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물론 사람들에 의해 길들여진 가축들은 사람을 도와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한 의미의 노동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일합니다. 인간만이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노동은 인간의 본질과 인간성을 드러내는 가장 두드러진 표시입니다.


노동의 주체는 인간이라는 것은 물러설 수 없는 불변의 진리이며, 노동에는 반드시 가치가 부여되어야 함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입니다만 많은 경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때로 인간은 너무나 과도한 일에 파묻혀 인간이 주체가 아니라 노예로 전락하고 맙니다. 노동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릅니다. 때로 노동자는 단순한 도구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힘든 일이 되겠지만 근로자와 사용자가 함께 노동에 대한 의미부여, 노동에 대한 가치 추구를 위해 보다 많은 고민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근로자 각자가 행하는 노동이 복음에 비추어 재조명 되고 하느님 앞에 의미가 부여되길 바랍니다.


근로자와 사용자가 함께 노동의 영성에 주목하게 되길 바랍니다. 노동의 영성이란 이런 것이겠지요.


인간은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 창조주 하느님께 보다 가까이 갈 수 있게 되고,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 인간과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참여하게 된다. 플러스알파로 노동과 신앙과 조화시키고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추가됩니다.


예수님 역시 노동하는 인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랜 세월 나자렛에서의 노동 가운데 공생활을 준비하셨습니다.


사도 바오로 역시 자신이 노동자(천막 짜는 사람)였음을 기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소개했으며, 복음 선포자이면서도 남한테 의지하지 않고 자기 손으로 벌어먹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리도 열렬한 사도였으면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민폐 끼치지 않으려고 각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신자들에게 몸소 그런 모범을 보였던 바오로 사도였기에 자신 있게 이런 권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테살로니카 후서 3장 8절)


“묵묵히 일해서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테살로니카 후서 3장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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