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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요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24 조회수1,092 추천수15 반대(0) 신고
5월 24일 부활 제6주간 수요일-요한 16장 12-15절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강요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겪게 되는 많은 일들 가운데,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오랜 기간 공들여 쌓아올린 내 인생의 탑을 한 순간에 나를 무너트리고 마는 고통스런 사건들, 사사건건 부딪치고 서로 깊은 상처를 주고받는 괴로운 인연들을 만납니다.


저 무죄한 어린이들의 처참한 죽음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기아로 죽어가는 수많은 아이들, 불치병으로 소리 없이 꺼져가는 어린 생명들, 어른들의 폭력과 이기심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 청소년들의 고통은 또 어떤 의미입니까? 의로운 이들이 겪는 끔찍한 시련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까?


무엇보다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하느님께서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이시면서 어찌 이런 불합리한 현실을 그냥 바라만 보고 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신속히 개입하지 않으시는가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요즘 들어 조금 깨닫습니다. 하느님은 철저하게도 인내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그분의 반응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당신이 직접 나서기보다 누군가가 먼저 나서기를 기다리시는 것 같습니다. 그 누군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겠지요. 하느님은 이 불의하고 고통스런 현실 앞에서 우리의 협조와 투신을 요청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세상의 모순을 개탄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화살을 돌리기보다는 바로 내가 지금 나서는 것을 하느님은 원하시리라 믿습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시시콜콜한 사건들이 그때 그 때 개입하시고, 우리 인간 각자의 역사 안에 반복되는 모든 세세한 일들에 간섭하신다면 그것보다 견디기 힘든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인간이 저지르는 악행에 대해 그때 그 때 벌주신다면, 우리의 윤리 도덕적 타락 앞에 그때 그 때 질타하신다면, 우리의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내시고 만천하게 공표하신다면 단죄 받지 않을 사람, 그래서 이 세상에 남아있을 사람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 세상의 취약점, 모순, 부조리, 악행 앞에 크신 자비를 베푸십니다. 일단 기다리십니다. 기회를 주십니다. 길게 침묵하십니다. 그리고 깨닫기만을 기다리십니다. 당신 품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결국 변화되고 회개하고 행동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성령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아직 제대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의 현실을 잘 파악하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말씀을 자제하십니다. 그리고 당신 뒤에 오시게 될 협조자 성령께 나머지 일을 맡기십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오시면 제자들의 내면에서 이루어질 깨달음은 정녕 큰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제자들은 마침내 이런 깨달음에 도달할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메시아 예수님께서는 자신들의 현실적 욕구를 한없이 충족시켜주실 이 세상의 메시아가 절대로 아니라는 깨달음.


예수님은 이 세상의 다른 황제들이나 정복자들처럼 군사를 일으켜 약소국을 정복하고 폭력으로 그들을 다스릴 왕이 절대로 아니라는 깨달음.


결국 예수님은 한없이 참아내는 메시아, 인간의 폭력성 앞에 그 즉시 분개하시고 처벌하시는 진노의 하느님이 아니라 언젠가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진리의 길로 나아갈 때 까지 기다려주시는 인내의 하느님이시라는 깨달음.


강요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인간의 자유의지를 철저하게도 존중해주는 관대하신 하느님,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당신께로 돌아설 때면 너무 기뻐 어쩔 줄 모르시는 사랑의 하느님 앞에 그저 감사드리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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