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26 조회수767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6년 5월 26일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You will grieve, but your grief will turn to joy.    

                                         (John 16,20)

 

 

제1독서 사도행전 18,9-18

 

복음 요한 16,20-23ㄱ

 

지난 수요일에는 신부님들 모임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곳에서 어떤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세요.

“요즘 새벽 묵상 글에 너 손 다친 이야기를 너무 많이 써 먹는 것 아니야?”

하긴 손 다친 이야기를 많이 쓰기는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득 왜 이렇게 손 다친 이야기를 많이 썼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태어나서 처음으로 양손에 깁스를 했다는 새로운 경험 때문이며, 또 하나는 이러한 고통을 통해서 깨달은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나를 힘들게 했었던 과거의 일들이 지금 현재 더 많이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 과거의 힘든 기억들이 현재를 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어렵고 힘들었던 고통이라는 순간이 내게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고통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들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고통이 우리 삶에 얼마나 유익한 지 조금만 따져 볼까요?

우선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출산과 양육의 고통이 있었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같은 액수의 돈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수고와 땀이 들어간 돈과 아무런 노력 없이 얻게 된 돈 중에서 어떤 돈이 더 가치가 있을까요? 바로 수고와 땀이라는 고통이 들어간 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산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단순히 산 속의 경치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산을 오를 때의 어려움과 고통이 산 정상에서 충만한 기쁨으로 바뀐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고통의 신비가 아닐까요? 정말로 내게 다가오지 않았으면 하는 고통, 그러나 그 고통이 나에게 너무나 큰 기쁨을 가져다 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고통의 신비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라는 고통이 있었기 때문에 부활의 영광을 가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내게 맡겨진 십자가를 지고서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이 십자가가 무거워서 또한 이 십자가가 귀찮아서 던져버리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던져버리는 순간은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얻을 수 없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근심과 걱정에 휘감겨져 있다고 할지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살아간다면, 지금 내 자신이 안고 있는 근심을 바로 내 자신이 기쁨으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슬퍼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의 편에 서서 그들에게 힘을 주시기 때문에, 그 힘을 입어 더 쉽게 기쁨에 다가설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쁨에 다가설 때, 세상의 그 어떠한 것들도 우리들의 기쁨을 빼앗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내 주위 사람에게 힘들다고 투정부리지 맙시다.



 
 
자신을 비우고 새로운 지식을 채워라('좋은 글' 중에서)


 

선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학식이 높은 교수가 유명한 스님을 찾아가 깨달음을 구했다. 스님은 그에게 차를 권했다. 그 교수는 앉자마자 말을 시작했다. 자신의 아이디어와 계획, 소망 그리고 자신의 책과 프로젝트 그리고 선禪에 관한 자신의 생각등.

스님은 차를 따르기 시작했고 학자의 말은 계속되었다. 찻잔에 차가 넘쳐 탁자 위로, 그리고 마침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교수가 비로소 이야기를 멈추고 소리쳤다.

”조심하세요. 차가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스님이 대답했다. “당신은 이 찻잔처럼 가득 차 있습니다. 무엇인가 배우려 한다면 비워야 합니다. 빈 잔에는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는 자리가 있지만 가득 찬 잔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상대를 보지도 않으면서 거침없이 말을 쏟아내는가? 우리는 삶에서 이미 엄청난 지식을 받아들였고 매일 거기에 덧붙여 받아들이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도 앞의 이야기에 나오는 교수와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잔이 흘러넘치고 있다면 아무리 훌륭한 지식도 우리의 삶에 뿌리내릴 수 없다.


내 창가에서 보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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